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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카메라는 검은색’ 법칙이라도 있나요?

입력 | 2009-08-21 02:58:00


日올림푸스 상품기획 총괄책임자 스기타 씨

“왜 검은색이어야 할까요?”

일본 올림푸스 본사 SLR상품기획 총괄책임자인 스기타 유키히코(杉田幸彦·48·사진) 부장은 새로운 디지털렌즈교환식(DSLR) 카메라 개발을 고심하다가 이런 생각을 했다. 그는 2003년 방수 디지털카메라 ‘뮤’를 비롯해 렌즈 먼지제거 기능이 탑재된 DSLR 카메라 등을 개발하면서 올림푸스의 ‘브레인’으로 불렸다. 하지만 이미 포화상태가 된 카메라 시장에 혁신을 일으키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시장 조사에 나선 그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디지털카메라 구입 고객 가운데 20%가 DSLR를 사고 싶지만 투박한 디자인과 크기 때문에 선뜻 나서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는 디자인과 크기만 줄이면 20%의 고객을 새로 창출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 순간 스기타 부장은 ‘교복’과도 같은 DSLR 카메라의 검은색 디자인을 떠올렸다. 해답은 쉽게 나왔다.

“획일적인 검은색 디자인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죠. 가볍고 산뜻한 이미지를 강조하며 젊은 세대에 어필하는 상황인데, 검은색만을 계속 고집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올림푸스의 최신작 ‘PEN’(모델명 E-P1)은 공개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PEN은 1959년 발매된 올림푸스의 대표작으로 현재까지 1700만 대가 팔린 제품. 스기타 부장은 흰색 DSLR카메라, 작고 휴대하기 편한 디자인으로 리메이크했다. 특히 국내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온라인으로 예약 주문한 1000대가 실제로 5시간 만에 다 팔렸고, 오프라인에 내놓은 500대도 2시간 만에 동이 났다.

스기타 부장은 기자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인기의 비결에 대해 “소비자의 감성을 건드렸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는 “지금까지의 카메라가 셔터스피드나 조리개 등을 통해 기능으로 도움을 주는 것에 국한됐다면 지금의 카메라 트렌드는 ‘기기’가 아닌, 내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도구”라는 것이다. 소셜네트워크나 블로그 등 1인 미디어가 늘면서 딱딱한 기기보다는 자신의 감성을 드러낼 수 있는 도구로서 카메라를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그는 “제품 개발을 위해 10명의 내부 디자이너가 20가지가 넘는 디자인을 내놓으며 밤낮으로 매달렸다”고 말했다. 따뜻한 느낌을 주기 위해 손잡이 부분에 가죽을 덧입힌 것도 회의를 거듭한 끝에 나온 결과 중 하나다. 본체와 렌즈를 소형화하는 자체 개발 시스템 ‘마이크로 포서드’를 탑재하기도 했다.

그는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한국 시장에 더 많은 애정을 보였다. 그는 “한국 사용자들은 새로운 기술과 개념을 쉽게 받아들이는 ‘디지털 네이티브’들”이라며 “미국 유럽보다 작은 시장임에도 한국 소비자들의 감성은 가장 트렌디하다”라고 했다. 그는 PEN의 인기를 이어갈 새로운 감성 카메라를 이미 준비 중이다. “카메라는 단순한 정보기술(IT) 제품이 아니라 추억을 만들어 주는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따뜻한 카메라를 만들고 싶은 게 제 철학입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