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삼성 안준호 감독(53)은 선수 시절 ‘훈장 선생님’으로 불렸다. 남다른 노력으로 한자 실력을 키워 국제 대회나 전지훈련으로 출국할 때면 동료들의 신고서까지 대신 작성해 줬다. 당시에는 운동선수들이 공부는 거의 안 하던 시기여서 한자로 자신의 이름을 쓰는 일도 쉽지 않았다. 명색이 국가대표 선수인데도 영문 이름조차 모른다는 언론의 보도가 심심치 않게 나오던 때였다.
하지만 요즘 안 감독의 아들뻘 되는 후배 선수들은 공부를 하지 않으면 운동도 할 수 없게 됐다. 18일 개막된 고려대 총장배 전국남녀농구선수권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한자와 한국사 국가검정시험에서 6급 합격증을 받은 선수만 출전하고 있다. 한국중고농구연맹이 학생 선수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지난해부터 이런 방침을 각 팀에 전달한 뒤 처음 시행에 들어갔다. 단국대사범대부속고 최명도 코치(37)는 “우리 때는 학창 시절 1교시에 인사만 하고 체육관으로 향했다. 요즘은 오전 수업은 모두 듣게 하고 특별 과외까지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에는 불합격자도 팀당 2명씩 두 쿼터만 뛸 수 있도록 경과 규정을 뒀지만 낙방생이 많은 팀은 전력 차질이 불가피하다. 지난해 챔피언 무룡고는 평균 30점 가까이 넣던 간판 센터가 시험에 떨어져 예선 첫 경기에서 예상 밖의 패배를 당했다. 반면 안 감독의 모교인 광신정산고와 인성여고 등은 선수 전원이 합격했다.
중고연맹 박안준 사무국장은 “합격률은 70% 수준이다. 학업 분위기 조성에 큰 효과가 있다. 앞으로 영어까지 확대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근 국내 스포츠는 학교 체육의 정상화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운동만 하다 그만두면 방황하기 쉽고, 일찍 꽃을 피운 뒤 목표를 상실해 쉽게 지는 경우도 허다했다.
농구 스타 출신으로 금융기관 사장까지 지낸 김영기 전 한국농구연맹 총재(73)는 “1950년대의 교육제도가 지금보다 더 나은 것 같다. 학생은 본분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농구 코트의 ‘공부 바람’이 전체 학원 스포츠 변화의 신호탄이 되길 바란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