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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기업, 이것이 달랐다]한진중공업

입력 | 2009-08-22 02:58:00

한진중공업은 조선업을 확장하기 위해 2007년 필리핀 수비크 만 경제자유구역 231만 m²에 조선소를 세웠다. 사진 제공 한진중공업


조선강국 기반 닦은 ‘선박기술 사관학교’
철강화물선-냉동선 등 국내 첫 건조
‘한국 최초’와 함께 뱃길 72년
‘빅 싱크’ 바탕으로 재도약 노려

1970년대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조선소 앞에는 ‘항구다방’이 있었다. 이 다방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신생 조선소였던 현대조선중공업(현 현대중공업), 삼성조선(삼성중공업), 대우조선공업(대우조선해양)의 인사 담당자들이 이 다방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풍부한 경험과 기술이 있는 한진중공업 직원들을 영입하기 위해서였다. 스카우트를 위한 접선 장소였던 셈. 이들은 다방에서 만난 직원들에게 회사를 옮기면 직급을 높여주겠다며 접근했다고 한다. 한진중공업은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 조선산업의 기반을 닦은 ‘조선기술 사관학교’였다. 국내 조선업의 역사는 1937년 일본 자본으로 조선중공업이 설립되면서 시작됐다. 이 회사는 1945년 국영기업인 대한조선공사가 됐다. 1968년 민영화된 뒤 1989년 한진그룹에 편입돼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 한국 최초의 연속

한진중공업의 역사는 ‘한국 최초’의 연속이었다. 이 회사는 1938년 국내 최초의 390t급 철강 화물선을 건조해 한국 조선업의 시작을 알렸다. 1968년에는 처음으로 대만 어선을 수주해 수출했고 1972년 국내 첫 1만8000t급 대형 화물선을 제조하는 데 성공했다. 1970년대 들어서는 국내 최초의 냉동선, 화학제품 운반선, 자동차 운반선, 석유시추선 등을 잇달아 만들어 냈다.

1974년 국내 방위산업체 1호 기업으로 지정된 이래 초계함, 상륙함, 수륙양용 공기부양선, 잠수정 등 특수선 분야에서도 국내에서 가장 많은 건조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사업 규모에서 조선업계 ‘빅3’인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에 역전당하긴 했지만 주력분야의 기술력에서는 뒤지지 않는다. 컨테이너선의 경우 200여 척의 건조실적과 축적된 기술로 이 분야 최강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3대 해운조선 전문지인 마리타임리포트 등이 뽑는 세계 최우수 선박에 1992년 이후 지난해까지 다섯 차례나 선정된 바 있다.

한진중공업은 2006년 한진그룹에서 떨어져 나오면서 큰 전기를 맞았다. 다른 사업에 가려 집중적인 투자를 하지 못했던 조선업을 크게 확대하기로 했다. 그러나 부산 영도조선소의 면적엔 한계가 있었다. 조선소 규모가 작아 어느새 중소형 조선사로 밀려나고 있었다.

한진중공업은 고민 끝에 2007년 필리핀 수비크 만 경제자유구역 231만 m²에 조선소를 세우는 모험을 감행했다. 건설 추진 18개월 만에 대형 조선소를 완공했다. 올해 6월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도크까지 완공했다. 이를 통해 처음으로 초대형유조선(VLCC) 건조를 시작하며 대형 조선업체들과의 경쟁에 발을 들였다. 초·중대형 컨테이너선과 탱커선 건조능력을 확보했으며 원유생산저장설비(FPSO) 등 고부가가치 선박으로 품목을 늘리고 있다. 영도조선소는 잠수지원선(DSV), 극지탐사용 쇄빙선 등 고기술 특수목적선 개발에 집중하는 변신을 꾀하고 있다.

○ 장수비결은

한진중공업에는 ‘빅 싱크(Big Think)’라는 독특한 전략이 있다. 기존의 틀에 박힌 생각을 깨고, 창조적이고 대담한 아이디어를 실행한다는 전략이다. 조남호 회장은 “남들이 상상할 수 없는 미개척 분야에서 대담하고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기업문화를 만들자”며 이를 도입했다. 정철상 한진중공업 홍보팀장은 “2006년 독립 그룹으로 출범하며 내세운 새 경영이념이 창조경영이었다”며 “최근 국내 주요 기업의 모토가 된 창조경영을 이미 수년 전부터 도입했던 셈”이라고 설명했다.

회사의 명운을 가른 수비크조선소 건설도 ‘빅 싱크’의 산물이다. 이 시기 다른 조선소들은 대부분 중국행을 택했다. 전문가들은 건기와 우기가 있는 필리핀의 기후가 조선업에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조선기자재 업체가 없어 한국에서 배로 실어 날라야 했다. 그러나 한진중공업은 조선소 전체의 지붕을 덮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한계를 극복했다. 기후와 상관없이 24시간 작업이 가능해졌다. 생산성과 품질이 향상됐다. 필리핀 정부도 적극적으로 도왔다. 이 회사에서 일하는 기술자들은 10년 동안 다른 조선소로의 이직을 금지했다. 덕분에 인건비는 저렴한 대신 기술자들의 숙련도는 크게 높아지는 효과를 누렸다. 한진중공업은 더욱 대담한 경영으로 그룹 결성 3년 차인 올해 ‘조선산업 1번지’의 영광을 되찾기 위한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다진다는 계획을 마련했다.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한진중공업 약사

-1937 조선중공업 설립

-1938 국내 최초 철강 화물선 건조(390t급)

-1945 대한조선공사(국영)

-1968 민영화

-1969 국내 최초 선박 수출

-1977 국내 최초 석유시추선 건조

-1989 한진그룹 편입, 한진중공업으로 상호 변경

-1995 동양최초 멤브레인형 LNG선 건조

-2005 한진그룹에서 계열 분리 독립

-2006 한진중공업그룹 출범, R&D센터 준공, 필리핀 수비크조선소 기공

-2007 지주회사 체제 전환 (한진중공업홀딩스 출범)

-2009 수비크조선소 6도크 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