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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고용허가제’ 노사 불만의 5년

입력 | 2009-08-22 02:58:00


“맘대로 못옮겨” “일할 만하면 나가”

#사례1. 2년 전 입국한 필리핀 제리스 씨(가명·28). 올해 초 경기 군포시 A 정밀업체에서 일하게 됐지만 회사는 임금을 자주 체불해 이직을 시도했다. 하지만 2개월 후 다시 A 업체로 돌아와 일할 수밖에 없었다. 외국인 근로자는 재취업을 두 달 안에 하지 못하면 자국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A 업체는 임금을 체불해 또 이직을 생각했지만 옮길 수 없었다. 이미 회사를 2번 옮겨 직장이동 횟수(3회) 제한에 걸렸기 때문이다.

#사례2. 돼지고기 가공회사인 T 업체는 최근 인력부족 사태에 시달리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네팔인 근로자 3명은 회사에 온 지 3, 4개월 만에 “서서 일하니 다리가 아프다”며 회사를 옮기겠다고 한다. “사람이 너무 부족하니 참아달라”고 사정했지만 외국인들은 출근하지 않고 기숙사에서 자는 등 태업을 계속했다. T 업체 관계자는 “알고 보니 돈 더 많이 주고 일이 편한 곳을 알아 이직하려 한 것”이라며 “‘배 째라’는 식으로 일을 안 하니 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외국인 근로자
고용주 승인해줘야 이직
횟수도 3회 제한 ‘족쇄’
체임-폭력에 시달리고 부당해고로 불법체류자 전락

○ 외국인 근로자 “사업장 변경·구직기간 제한은 인권 침해”

‘외국인고용허가제’가 시행된 지 5년이 지났다. 2004년 8월 17일부터 도입된 이 제도는 ‘중소기업 인력난’과 ‘저개발 외국인 불법체류’를 한꺼번에 해소하는 것이 목적이다. 도입 후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은 모두 16만6715명(2009년 6월 현재). 2004년 3167명에서 2005년 3만1659명으로 늘어난 뒤 지난해 7만5024명으로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5년이 지난 현재 외국인 근로자와 이들을 고용하는 사업주 모두에게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N 휴대전화회사에 다니던 필리핀 여성 B 씨는 여성이 하기 힘든 업무에 배치되자 올 6월 사업장 변경을 요청했다. 하지만 회사는 계속 일을 하라고 종용해 B 씨는 7월부터 직장에 나가지 않았다. 그러자 회사 측이 노동부 고용지원센터에 이탈을 신고해 B 씨는 불법체류자가 됐다. 고용허가제 시행 당시 18만 명이던 불법체류자는 5년이 지난 현재 18만9847명(5월 기준)으로 오히려 증가했다. 외국인 근로자들은 △사업장 변경 횟수 제한(3회) △구직 기간을 2개월로 한정 △이동 시 고용주 승인 등의 조항으로 임금을 자주 체불하는 직장을 떠날 수 없거나 부당해고당해 합법적인 외국인 근로자 신분에서 불법체류자로 전락하는 폐해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차별과 인권침해도 여전하다고 지적된다. 시민단체인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가 고용허가제를 통해 입국한 이주노동자 533명을 조사한 결과 △월급이 일한 것보다 적게 나온 경우 37.7% △월급이 한 달 이상 밀린 경험 21.8% △동료나 상사에게 폭언이나 구타당한 경험은 각각 35.8%, 10.5%나 됐다.

한국인 고용주
돈 들여가며 교육시키면 다른 데 보내달라고 태업
내국인보다 비용 안싼데 툭하면 임금 적다고 신고

○ 중소기업주 “외국인들, 일할 만하면 막무가내로 나가 난감”

외국인 못지않게 이들을 고용하는 중소기업 측도 불만이 컸다. 외국인들이 자주 직장을 옮겨 기업 경쟁력이 저하된다는 것. 최근 1년 된 외국인 노동자 5명 중 3명이 그만둬 곤욕을 치른 C 사 관계자는 “어디가 돈을 많이 준다는 정보가 들어오면 직장을 옮긴다”며 “사업장 변경은 고용주 승인이 있어야 하지만 안 보내주면 태업을 해 어쩔 수 없이 보내준다”고 밝혔다.

중소기업은 외국인 근로자를 데려오기 위해 입국지원 행정대행비용, 취업교육비 등 25만 원의 비용을 들이며 두세 달 이상 기다린다. 이렇게 확보한 외국인 근로자를 업무에 능숙하게 교육시키려면 3∼6개월 걸린다. 한 중소업체 관계자는 “3개월 걸려 데려왔는데 15일 만에 나갔다”며 “회사가 ‘한국에 들어오게 하는 도구’밖에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외국인 근로자는 내국인과 봉급차가 크지 않다. H 업체의 경우 내국인 근로자는 월 150만 원 받는 반면 외국인 근로자에게는 130만 원을 지급하다. 하지만 외국인은 아침 점심 식사, 식재료 제공, 기숙사 제공 등으로 한 달에 25만 원 정도 더 들어간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예전에는 중소기업들이 비용이 싸서 외국인을 고용했지만 계속 비용이 올라가고 있다”며 “조금만 돈을 덜 준다 싶으면 외국인들은 노동부로 찾아가 신고하니 여러모로 부담스럽다는 중소기업이 많다”고 말했다.

노동부는 기업의 휴폐업으로 인한 사업장 변경은 횟수에 포함시키지 않고 구직기간을 3개월로 늘리는 등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근로자-고용주-정부측 의견

“체류기간 3년은 너무 짧아”

“외국인 근로자들은 한국에 더 있고 싶어 불법체류자가 되고 고용주는 일을 가르치다가 3년이 끝나죠.”

스리랑카에서 산업연수생으로 왔다 한국인과 결혼해 7년간 한국에서 살고 있는 자나카 위신무디안엘라게 씨(38·사진)는 현행 외국인 고용허가제가 지나치게 제한적이라고 비판한다. 그는 “3년이 지나고 사장이 3년간 더 일할 수 있도록 연장을 허락해 주지 않으면 떠나야 한다”며 “그걸 보완하겠다고 5년으로 고용 허가기간을 늘리겠다고 하는데 오히려 6년보다 짧으니 다들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세 번만 직장을 바꿀 수 있게 한 것도 고용주 중심적인 정책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경기가 안 좋아 일거리가 없거나 회사 사장이 나가라고 하면 회사를 바꿀 수밖에 없는데 3번 회사를 옮기고 나면 싫어도 참고 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외국인 근로자들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위신무디안엘라게 씨는 “월급이 5만 원 적다고 계약기간 1년이 차기만 기다렸다가 회사를 옮겨버리는 사람이 많다”며 “기술을 익혔으니 월급을 올려 달라고 요구하는 적극성을 가지라”고 조언했다.

“한 직장 의무 근로기간 필요”

중소 도장업체인 미광사를 경영하는 차정학 사장(47·사진)은 고용한 외국인 근로자 5명 중 3명이 최근 회사를 그만뒀다. 차 사장은 기술을 익히고 업무에 적응하기도 전에 월급이 조금 적다고 회사를 옮겨버리는 일부 외국인 근로자들의 태도를 지적했다.

그는 “1년 정도 일을 가르쳐 이제 겨우 일을 시킬 만한데 다른 곳에서 월급을 더 준다고 옮겨버리고 말았다”며 “외국인 노동자가 1년 또는 2년 내에는 다른 직장으로 옮길 수 없도록 의무화하는 제도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고용 계약을 할 때 임금 조건에 동의를 했으면서도 다른 곳으로 옮기려고 일부러 태업을 하는 근로자도 많다”며 “현행법상 노동부 고용지원센터가 심사를 해 허용한 경우에만 사업장을 옮길 수 있다고 하지만 근로자들이 태업을 하면 고용 계약을 해지해 줄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차 사장은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도 지켜야 하지만 외국인 노동자가 자기 처지뿐만 아니라 자신이 몸담은 기업도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점을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사 소통 위해 통역 서비스”

민길수 노동부 외국인력정책과장(42·사진)은 “3년 체류 후 1개월 출국하도록 한 현행 고용 허가제로 불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들이게 된다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지적이 있었다”며 “1개월 출국 요건을 없애고 국적 취득요건상 체류기간인 5년까지 체류할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올라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외국인 근로자의 사업장 변경과 관련해서도 “고용주 승인이 있어야만 사업장을 옮길 수 있다는 것은 오해”라며 “임금이 낮다는 이유 외에 임금 체불이나 사업주 폭력 등 정당한 사유가 있을 때는 얼마든지 사업장을 옮길 수 있다”고 말했다.

민 과장은 외국인 근로자와 고용주가 의사소통을 제대로 하지 못해 오해를 빚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근로자가 태업을 한다며 고용주가 신고를 해 통역을 동원해 실상을 알아보니 근로자가 장염을 앓아 일을 하지 못했던 사례도 있었다는 게 민 과장의 설명. 그는 “노동부 고용지원센터와 한국산업인력공단 내 외국인팀을 활용해 통역 서비스를 제공하고 고용주에게도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적극적으로 알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