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다도’ 눈부신 풍광, 미술관 속으로
《제주의 바람과 파도, 빛이 온몸으로 스며든다. 한지를 이어붙인 조각조각 패널들이 시시각각 바뀌는 조명을 받으며 제주의 투명한 바다를 떠올리게 한다(전가영의 ‘휘파람 부는 바다’).
아담한 돌담 너머에 자리한 둥근 돔에선 마라도와 백령도의 파도 소리를 담은 애니메이션이 펼쳐진다(릴릴의 ‘고요한 항해-한반도’).
‘빛의 예술가’ 제임스 터렐과 형광 점박이 같은 유기체를 연상시키는 오니시 야스아키의 설치작품은 빛을 새롭게 인식하게 한다.》
도립미술관-김영갑 갤러리
바람-물-빛 등 자연 형상화
골프 코스에 작품 전시 등
색다르고 실험적 행사 눈길
제주 제주시 신비로 제주도립미술관(064-710-4300)에서 9월 30일까지 열리는 개관기념전 중 국제전 ‘숨비소리’는 국내외 작가들의 미술작품을 통해 제주의 새로운 매력을 일깨운다. 내리막길이 오르막처럼 보이는 ‘도깨비 도로’ 근처에 자리한 이 미술관은 6월 말 개관 이래 하루 600∼1000명의 관람객이 꾸준히 찾고 있다. ‘환태평양의 눈’이란 주제 아래 모인 ‘숨비소리’, ‘바다를 닮은 화가 장리석’ 등 네 묶음의 전시도 알찬 데다 수려한 자연 앞에 수굿하게 고개 숙인 건축도 주목할 만하다.
제주와 현대미술의 소통이 활발해지고 있다. 다양한 전시와 이벤트가 집중되면서 문화예술의 향기가 제주의 새로운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는 것. 언제든 제주에 들를 기회가 생긴다면 천혜의 자연만 아니라 미술의 명소를 둘러볼 일이다.
○ 아트 인 제주
‘찰그락, 찰그락.’
제주도립미술관의 로비에 들어서면 영국 작가 톰 윌킨슨이 유리로 빛의 파도를 만들어낸 ‘라이트 웨이브’의 사운드가 관람객을 반겨준다. 제주가 풍성하게 선물받은 바람 물 빛 등을 조형화한 11개국 36명의 작품을 선보이는 ‘숨비소리’에 나온 작품이다.
제주를 상징하는 돌담으로 동선을 나눈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면 신문지로 쌓은 거대한 탑 구조물에 씨앗을 심어 성장과 소멸의 과정을 다룬 김주연, 제주의 물과 풍경 이미지를 활용해 쌍방형 작품을 선보인 이배경, 물로 쓴 일기를 사진으로 기록한 송동, 백인과 흑인 발레리나를 등장시켜 이분법적 구도를 모호하게 만든 잉카 쇼니바레 등의 설치, 평면, 영상이 자연스레 어우러진다. 전시해설사 이영훈 씨는 “현대미술을 처음 접하는 관람객들도 시각적으로 재미있고 신선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의 신비한 아름다움에 빠져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3코스 올레길에 자리한 서귀포시의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064-784-9907)의 사진전이 제격이다. ‘평소 제주만을 사랑하고 이제 제주의 바람이 된’ 사진작가 김영갑이 찍은 제주 사진을 전시하는 곳이다. 폐교를 아늑한 전시장과 찻집으로 꾸민 두모악에는 요즘 올레길을 걷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
태평양을 향한 바닷가가 내려다보이는 중문관광단지의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064-739-0012)는 5월 문을 열었다. 멕시코 출신의 세계적 건축가 리카르도 레고레타가 설계한 작은 공간은 건물 자체가 작품이다. 햇빛과 어우러져 연분홍빛으로 물드는 계단과 보라색으로 빛나는 복도 등 강렬한 색감과 조형적 공간은 초현실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건물과 1층 갤러리의 관람은 무료지만 예약을 해야 한다.
○ 아트 마케팅 인 제주
제주는 실험적이고 색다른 예술행사의 무대로도 선호된다. 21∼23일 열린 ‘넵스 마스터피스 2009’ 골프대회의 경우 골프와 미술의 만남이란 독특한 아트 마케팅을 펼쳤다. 푸른 잔디밭에 색색가지 종이를 공처럼 구겨놓은 듯한 강용면의 조각과 나뭇가지를 머리에 얹은 이강훈의 흰 사슴 등 골프 그라운드 위에 금중기 최태훈 정태전 김무준 등 18명의 작품이 어우러졌다.
이주헌 미술평론가가 기획한 식물과 사람, 예술을 잇는 행사도 준비 중이다. 9월 2일부터 서귀포시 여미지 식물원에서 개막하는 제1회 여미지 아트 프로젝트다. ‘초심, 초심(草心, 初心)’이란 주제 아래 정현 안규철 강익중 배영환 등 10팀의 작품이 2년간 선보인다.
구슬이 많아도 꿰어야 보배다. 긴 안목에선 제주의 풍광과 더불어 전시와 건축 등을 둘러보는 아트 투어를 구상하는 것도 가능할 터다. 몸의 휴식을 즐기는 관광지를 넘어서 지친 마음을 보듬어 주는 문화명소를 꿈꾼다면 말이다.
제주=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