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창의력 키우려면 호기심-유희정신 살려야”
박 이사장 - 공학분야도 비즈니스 마인드 갖출때
호르데르 장관 - 과학교육에 휴대전화-컴퓨터 활용을
“공학 분야는 정말 빨리 변하죠. 정보기술(IT) 등은 새로운 이론이 1년만 지나도 구식이 됩니다. 평생 공부하며 업데이트를 하지 않으면 안 되죠.”(박찬모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어떤 교사가 제게 이런 얘길 하더군요. ‘학교를 졸업하는 것이 끝이라고 생각한다면 정말 모든 게 끝이다’라고요.(웃음)”(베르텔 호르데르 덴마크 교육부 장관)
한국-덴마크 수교 50주년을 맞아 교육과학기술부 초청으로 내한한 호르데르 장관과 박 이사장은 24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한국공학교육학회(ICEE) 포럼에서 자리를 함께했다. 두 사람은 이공계 위기, 수학·과학 교육 개선 방안, 산학협력 강화 등 과학 교육에 대해 폭넓은 대화를 나누며 시종일관 서로의 의견에 공감을 표했다. 두 사람은 이공계의 위기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호르데르 장관=이공계 기피는 덴마크 정부도 심각하게 생각하는 현상입니다. 아이들이 수학과 과학을 피할 뿐만 아니라 이를 가르칠 인력도 많지 않은 상황입니다. 특히 과학 교사가 많이 부족해요. 그래서 우리는 자연과학에 대한 흥미를 높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가능한 한 모든 경쟁에 참여시키는 거죠. 학생들이 수학 화학 물리 등 각종 올림피아드와 경시대회에 많이 참여하는 것은 물론이고 교사들도 같은 방식으로 경쟁을 합니다. 예를 들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바탕으로 발명을 하게 하는 대회를 열고 있어요.
▽박찬모 이사장=미국조차도 빌 게이츠가 전국을 돌면서 컴퓨터 교육을 권유할 정도라니까 이공계 위기는 세계적인 문제입니다. 우리 학생들은 대학에 갈 때 기술이나 과학을 외면하고 의대나 약대에 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안정적인 직업을 얻고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한국에는 이공계 분야의 우수 인재가 모인 과학고가 20곳 있습니다. 저는 과학고 학생들은 대학에 갈 때 과학 전공을 택했으면 좋겠는데 일부 학생이 의약학을 찾는 것이 유감입니다.
▽호르데르=우리도 아이들이 대학에 갈 때 과학 분야를 택하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캠페인을 하고 훌륭한 롤 모델을 아이들에게 제시하기도 해요. 특히 최근 문을 연 ‘내셔널 사이언스센터’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컴퓨터와 인터넷을 기반으로 최신 교재를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교사를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교육부가 1500만 달러를 투자했고 점차 자금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박=과학 교육이 더 발전하려면 학생들이 이론뿐만 아니라 실무도 배워야 합니다. 실용적인 지식, 산업 현장을 고민할 수 있도록 실무와 이론을 겸비하고 통섭적인 지식을 갖춰야 합니다. 나는 포스텍 총장 당시 이공계 학생들에게 이중전공을 하도록 했어요. 또 저는 대학에서 연구개발(R&D)이라는 개념을 R&BD로 바꿨습니다. 공학 분야에서도 비즈니스(Business) 마인드를 중시한 거죠.
▽호르데르=R&BD라는 개념은 정말 적절하네요. 저도 이 용어를 차용해서 쓰겠습니다. 이론과 실무가 계속 통하도록 해야 합니다. 기업도 적극 협조해야죠.
▽박=우리 기업들은 대졸 직원들이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능력이 없어서 재교육 비용이 많이 든다고 불평을 합니다. 나는 기업들이 재교육 비용을 쓰는 것보다 차라리 미리 대학에 투자를 하라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졸업 전에 기업이 원하는 트레이닝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면 기업도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요. 대학도 학생을 가르칠 때 정부의 과학정책 기조와 기업 현장의 수요를 이해해야 합니다. 가령 지금 우리 정부가 녹색성장을 강조하고 있으니 이에 맞춰 녹색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겠죠.
▽호르데르=덴마크는 상위 5대 기업 중에서 4곳이 과학 교육에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유명한 레고(LEGO)사의 경우 레고를 통해 창의성을 키울 수 있는 교육시스템을 만들어 학교에서 교육이 진행되도록 지원합니다. 다른 회사들도 사이언스파크나 과학교사 지원 프로그램을 경쟁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대화가 무르익으면서 두 사람이 다다른 공통된 결론은 ‘미래는 창의력의 시대’라는 점이었다. 자연히 창의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교육 방식에 대한 의견도 오갔다.
▽박=한국 학부모들은 자녀에게 너무 이거 해라, 저거 해라, 공부해라 하다 보니까 아이들이 창의력을 키울 시간이 없습니다. 아이들이 호기심을 갖도록, 창의적으로 뭔가를 배우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아이들이 클럽을 만들어서 과학적 현상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것도 좋겠죠. 나는 어릴 때 시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해서 탁상시계를 3개나 뜯어 고장 내기도 했어요.
▽호르데르=저도 어릴 때 닭이 알을 낳을 수 있도록 시간에 맞춰 불이 켜지는 장치를 만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이들의 창의력을 키우려면 호기심과 ‘플레이 스피릿(유희 정신)’을 살려줘야 합니다. 아이들이 늘 쓰는 휴대전화나 컴퓨터 같은 도구를 창의력 교육에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우리는 수년 내에 1인 1노트북 환경을 갖출 계획입니다. 정보화가 발달한 덴마크와 한국이 이런 창의력 교육에서 앞장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찬모 이사장
-1935년생
-1958년 서울대 화학공학과 졸업
-1968년 미국 메릴랜드대 박사학위 취득
-1979∼1989년 미국 가톨릭대 교수
-1990∼2003년 포스텍 교수
-2003∼2007년 포스텍 제4대 총장
-2008년∼ 대통령과학기술특별보좌관
-2009년∼ 한국연구재단 초대 이사장
◇베르텔 호르데르 장관
-1944년생
-1971년 오르후스대 정치과학과 졸업
-1975∼1998년, 2005년∼ 덴마크 의회 의원
-1982∼1993년 교육연구부 장관
-1994∼2001년 유럽의회 의원
-2005∼2007년 교육부 장관 및 성직부 장관
-2007년∼ 교육부 장관 및 북유럽협력부 장관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