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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 칼럼]초과잉 포장된 이른바 ‘시민사회’

입력 | 2009-08-27 22:56:00


이번 김태환 제주지사에 대한 주민소환운동은 ‘김태환지사 주민소환운동본부’가 이끌었다. 제주도의 진보 성향 시민사회단체 29개가 결성한 기구다. 이들은 투표율을 40%대까지 기대했다. 주민소환을 청구하도록 서명한 도민은 5만1044명이었다. 이들이 주변 사람을 상대로 한 사람당 2명씩만 투표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면 높은 투표율이 나올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민주당의 제주지역 당원도 ‘소환투표 지지’를 표명했다. 이른바 ‘시민사회 세력’이 결집해 치렀던 투표였다.

제주 소환투표가 보여준 그들의 거품

하지만 실제 투표율은 11.0%에 그쳤다. 총투표자는 4만6076명으로 주민소환 청구 당시 서명에 참여한 수에도 못 미쳤다. 김 지사를 퇴진시키는 데 필요한 최소 33.4%의 투표율과는 거리가 멀었다.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전국적인 선거가 아니라 ‘제주도’라는 특정 지역에서 ‘해군기지 신설’이라는 특정 이슈에 한정된 심판이었다고 해도 싱거운 결말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시민사회 세력’이란 말은 상당한 무게감을 주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객관적으로 보면 좌파 성향의 개인 혹은 집단에 불과한데도 ‘시민’ ‘진보’ ‘민주’ 같은 듣기 좋은 말을 선점해 ‘용어(用語) 전쟁’에서 점수를 따고 들어갔다.

언론의 지원도 컸다. MBC 뉴스는 이들이 폭력시위를 벌이더라도 ‘시민’이라는 명칭을 꼬박꼬박 붙여준다. ‘경찰이 시민을 강경 진압했다’고 보도하는 식이다.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인 만큼 중립적 표현으로 ‘시위대’라고 부르면 될 텐데 ‘시민’이라는 표현이 시청자에게 각인되면서 어떤 불법을 해도 정당한 집단으로 왜곡되는 부작용을 낳았다.

그 결과 이들은 노무현 정권 때 우리 사회의 방향을 결정하는 자리에 주인공 행세를 했고 정권이 교체된 지금도 빠짐없이 ‘초대장’을 받아들고 있다. 정부 산하 위원회, 각종 세미나와 토론회, 민간단체의 구성에서 ‘시민’과 ‘사회’를 대표하는 집단으로 자처하며 발언권을 행사한다.

그러나 11%의 낮은 투표율은 지금까지 시민사회 세력이라는 말에서 느껴져 온 존재감과는 꽤 괴리가 있다. 우리 사회가 ‘시민사회 세력’을 실제보다 훨씬 큰 것으로 인식하고, 너무 융숭하게 대접하고 있는 게 아닌지 살펴보게 만든다. 시끄러운 소수에 의해 말 없는 다수가 끌려다니고, 이로 인해 국력의 분산과 사회적 낭비를 초래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다.

우리의 시민사회 세력 같은 집단이 외국에도 있기는 있겠지만 우리처럼 부정적 운동방식으로 일관하는 곳은 없다. 한국의 시민사회 세력은 선전선동에 목숨을 건다. 미디어관계법에 대한 결사반대는 이들이 가장 유효한 선전선동 수단이라고 여겨온 언론에 대한 집착을 드러낸다. 특정 신문에 대한 불매운동도 성이 안 차 광고주까지 협박하는 방식은 파괴적이고 증오로 가득 차 있다. 인터넷에서 자신들의 의견은 부풀리고 반대 주장에 무차별 공격을 가해 입을 막아버리는 이들의 야비한 행태를 모르는 사람은 이제 없다. 지금과 같은 과잉 지분 확보는 이런 네거티브 방식에 힘입은 바가 컸지만 동시에 그들만의 울타리에 갇혀 버리는 한계를 자초했다.

선동 버리고 ‘생활 속으로’ 들어가야

시민사회 세력은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지난해 촛불 집회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사건은 이들로 하여금 과거의 운동방식이 옳은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영원히 저항세력으로만 머물고 싶지 않다면 달라져야 한다. 거리의 유혹에서 벗어나 민생 속으로 들어가 실질적으로 국민생활에 득이 되는 진보적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그래야 국가에 이바지할 수 있고 장차 권력을 잡을 기회를 얻을 것이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