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성 길 따라 시원한 전망… 강화쪽 해넘이 봐야 제맛
한낮 땡볕 위로 펼쳐진 맑고 파란 여름하늘. 거기서 하얀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자연은 거짓이 없다. 입추가 지나니 아침저녁으로 선선하다. 그러다 보니 저녁노을도 좋다. 해질 녘 서쪽 하늘을 보시라. 흰 구름을 주황빛으로 물들이는 여름 석양이 아름답다. 그래서 차에 올라 강화도로 내달렸다. 평소 보아둔 그곳으로.
거기는 강화도의 문전, 김포의 문수산이다. 위치는 강화도와 김포를 갈라놓는 염하 강(江)을 끼고, 그 염하를 가로지르는 강화대교 바로 앞이다. 이 산의 백미라면 360도 펼쳐지는 울트라급 전망. 강화도와 김포평야는 물론 염하 강과 한강, 그리고 한강 하구의 너른 뻘밭까지 한눈에 조망된다. 그뿐이 아니다. 한강 너머의 북한 땅(개풍군)도 훤히 내려다뵌다. 맑으면 개성의 송악산까지 보인다니 가슴이 설렌다.
이곳엔 산성이 있었다. 성벽은 지금도 웬만큼 남아있다. 복원도 진행 중이다. 정상을 향한 산길은 대부분 성벽을 따른다. 그 성벽은 자체가 역사다. 청나라와 몽골은 물론 19세기 말 프랑스와 미국 등 당시 우리 땅을 넘보던 열강의 침략과 민족의 핍박 고통의 역사가 새겨져 있다. 멋진 풍치와 동시에 역사와 교훈을 담은 문수산. 그 성벽을 따라 트레킹한다.
문수산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물론 김포주민들이야 내 집 마당처럼 들락거려 잘 알고 있지만. 그런 데는 이유가 있다. 강화도 찾는 이의 눈에 잘 띄지 않아서다. 그도 그럴 것이 강화대교가 보이면 앞뒤 돌아볼 것 없이 강화 땅으로 돌진하는 것이 대개 여행자의 성정인 탓이다. 문수산은 강화대교 오른쪽에 있다.
이 산은 높지 않다. 정상이라고 해야 해발 376.1m다. 이 산은 들녘에 불쑥 솟았다. 김포평야다. 그리고 두 물에 발을 담근 형국이다. 북쪽의 한강과 서쪽의 염하다. 염하는 강화도와 김포 사이 강화해협을 흐르는 물. 한강의 민물, 서해의 바닷물이 뒤섞였다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강화도는 한때 고려 수도였다. 몽골 침입으로 핍박받던 39년간(1232∼1270년)이다. 그때 왕궁은 고려산 아래 있었다. 그 성을 방호하느라 삼중의 강화성이 축조됐다. 그때 문수산도 요새화됐다. 그때 축조된 산성은 높이 2.7m에 길이가 6129m. 성벽은 강화도와 마주한 서사면의 산등성에 ‘U’자 형태로 삼면뿐이었다. 나머지 한 면은 물이 대신했다. 강화도 갑곶(강화대교 옆)을 잇던 갑곶나루의 염하가 그것이다.
강화대교를 목전에 둔 삼거리(성동검문소). 북쪽으로 방향을 틀면 마을(성동리)로 접어든다. 염하를 따라 문수산으로 이어지는 이 길. 5분쯤 가면 문수산 산림욕장 팻말이 보인다. 거기 주차장이 산길의 들머리다. 산길은 두 갈래다. 곧장 오르는 숲길과 성벽을 따르는 능선 길인데 거리와 시간은 비슷하다.
나는 해넘이를 볼 요량으로 오후 3시쯤 늦게 능선 길로 올랐다. 능선에 닿자 염하의 강화대교부터 선뜻 눈에 들어왔다. 대교 건너 왼쪽, 갑곶진도 보였다. 강화대교가 놓인 곳은 염하에서도 그 폭이 가장 좁은 곳. 외적의 도하작전이 예상되는 곳이다. 이곳 물가 양편에 요새가 많은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갑곶진은 게서도 핵심 요새다.
갑곶진 역사는 들어 잘 안다. 요새는 몽골침공 때 축조됐다. 그러나 난공불락의 요새도 조선시대 병자호란(1636년) 중에 함락됐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법. 강화외성의 요새였던 갑곶진이 무너지자 강화성도 함락됐다. 그 때문에 난을 피해 이리로 피신한 인평대군과 세자빈이 붙잡혔다. 나무꾼 등에 업혀 남한산성으로 몽진한 인조도 어쩔 수 없이 성을 나왔다. 그리고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항복하는 수모를 당했다.
이 갑곶진에 강화유적관이 있다. 고 박정희 대통령이 국난극복의 현장으로 강화도 유적을 정비하면서 세운 것이다. 굳이 갑곶진을 택한 이유. 뼈저린 실수를 다시는 되풀이하지 말자는 뜻이다. 강화성 공략은 쉽지 않았다. 염하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문수산성과 갑곶진의 포진이 너무도 완벽해서다.
청나라 장수는 문수산성부터 공략했다. 그리고 문수산에 올라 갑곶진을 살폈다. 그런데 의외로 방비태세가 허술한 것을 알게 됐다. 갑곶진의 수비대장이 요새 지형만 믿고 도하에 이용될 수 있는 배만 치우고는 방비는 게을리 한 탓이다. 그는 야간기습을 지시하고 문수산성의 민가를 뜯어 만든 뗏목으로 강을 건넜다.
산길은 능선을 타고 뻗은 성벽을 따라 계속 이어진다. 길은 약간 가파른 데다 땡볕에도 노출돼 있었다. 한여름에는 걷기 힘든 길이다. 하지만 그 보상이 넉넉하니 딴생각일랑 접자. 뒤돌아 볼 때마다 고도 오름에 따라 점입가경하는 염하와 강화 섬, 김포평야의 풍경이 그것이다. 이렇듯 경치를 즐기며 훠이훠이 한 시간쯤(1.2km) 오르다 보면 곧 전망대다.
이곳 경치는 압권이다. 이제껏과 비교를 거부할 만큼. 왼쪽(남쪽)으로는 초록 일색(논)의 김포평야가, 그 옆으로 유유히 흐르는 염하와 그 물 건너 강화도가 보인다. 정면의 강화대교 너머 강화도는 산악일색. 높고 낮은 여러 산은 중첩된 상태로 섬 전체를 아우른다.
그 오른쪽(북쪽)을 보자. 주야장천 515km를 흘러 서해로 유입되기 직전의 한강과 그 물이 적시는 드넓은 개펄의 한강하구가 펼쳐진다. 그 물 너머 북한 땅 개풍군도 손에 잡힐 듯 가깝다. 가을이나 겨울의 맑은 날에는 개성 송악산도 보인다고 했다.
전망대에서 정상까지 거리는 800m. 길도 가파르지 않은데 한동안은 성벽을 따라, 이후로는 숲길이다. 드디어 정상. 하지만 기대했던 360도 파노라마 풍광은 불발이다. 숲의 나무 때문인데 때 이른 실망은 금물. 해병대 초병이 지키던 초소(컨테이너박스) 주변 샛길이 해답이다. 그 길 끝의 숲 가장자리에 기막힌 전망 포인트가 숨겨져 있다. 한강과 하구 개펄, 북한 땅과 더불어 김포평야 끝자락에 아련한 일산신도시의 아파트 숲까지 들어온다.
산정에서 노닥거리다 해질 녘이 되서야 전망대에 돌아왔다. 그리고 느긋이 의자에 기대어 해지기만을 기다렸다. 그날은 오후 내내 맑았고 덕분에 노을은 기대만큼 멋졌다. 온종일 대지를 뜨겁게 달궜던 한낮의 태양도 해질 녘에는 그 힘을 잃는 듯했다. 강화도 고려산 너머로 뉘엿뉘엿 지는 붉은 해에서 여릿한 푸근함이 배어나왔기 때문이다.
노을은 지는 해의 자취다. 그리고 질 때는 모든 것이 고요하다. 석양도 같다. 붉게 물든 하늘 아래로 세상은 적막감에 젖어든다. 그 산에서 유일한 소음이라면 막바지 먹이활동에 나선 산새의 지저귐뿐. 나는 그 소리를 벗 삼아 내려가기를 서둘렀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숲을 나가야 했으므로.
김포=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트레킹 정보 |
◇찾아가기 △문수산: 자유로∼김포대교∼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100호선)∼김포 나들목∼국도 48호선∼통진∼월곶∼성동검문소∼우회전∼마을길∼문수산 산림욕장(주차장)
◇트레킹 △코스: 주차장∼숲길(혹은 능선 길)∼삼거리∼전망대(입구)∼홍예문∼중봉(헬기장)∼정상 △들머리 ①능선 길: 주차장을 나와 산림욕장 관리사무소 앞길로 진입. ②숲길: 주차장에서 숲 속으로 들어가 계곡 왼쪽의 계단 이용 △난이도: 1∼5 중 2 △주의할 점: 낙조와 노을 감상 후 하산할 경우 어두운 숲길 걷기에 대비해 랜턴을 준비할 것.
◇트레킹 여행상품
승우여행사(www.swtour.co.kr)는 하루 일정의 트레킹 상품을 판매 중. 8월 30일과 9월 5, 6일 출발(서울 광화문, 잠실), 참가비 3만3000원. 아침간식, 여행자보험, 안내비 포함. 02-720-8311
◇맛 집
그날 도축한 신선한 국내산 토종한우 고기를 유통마진 줄이는 방식으로 공급하는 다하누(www.dahanoomall.com)촌 2호점이 지난 5월 김포시 월곶면에 문을 열었다. 정육도매센터에서 고기를 구입해 바로 옆 협력식당(9곳)에 가져가 상차림 비용(1인당 3000원)만 내면 그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도록 상을 제공한다. 특수부위(살치살 업진살 등)도 많다.
위치는 문수산성 주차장에서 차로 10분 이내. 근처에 김포국제조각공원과 김포허브랜드, 태산패밀리파크가 있어 하루 나들이 코스로도 좋다. 김포시 월곶면 군하리 110-5(월곶면사무소 앞), 031-984-1170, 1577-5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