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가 한때 1,600을 돌파했다. 일부 우량 종목은 과거 호황기에 도달했던 최고가를 넘어섰다. 경기회복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고 개별 기업들의 이익도 기대 이상으로 호전되고 있지만 아직 금융위기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나타난 주가 급등에 대한 시선은 엇갈린다. 1,400부터 조정을 기다리던 투자자들은 속이 탄다. 펀드나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투자자들도 급하게 상승하는 주가로 파티가 너무 일찍 끝나버리는 것은 아닌지 조마조마한 심정이다.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경기회복은 아직 멀었다고 주장하는데 주가만 왜 이렇게 급등하는 것일까?
주가 급등의 원인을 찾자면 대개 네 가지가 떠오른다. 첫째, 경기회복이 모든 전문가가 예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 중일 것이라는 추정이다. 이른바 V자 회복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얘기다. 경제상황을 실시간으로 정확히 진단할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현장의 체감온도는 3∼6개월의 시차가 있는 거시경제지표보다는 훨씬 뜨겁다. 2분기 아시아 주요 국가들이 전 분기에 비해 10% 이상 성장하고 있는 것도 급격한 경기 반등세의 한 증거다. 하지만 3분기 이후에는 성장이 둔화될 확률이 높다는 분석이 많다.
둘째, 대형우량주의 경우 매출이나 이익에서 과거 호황기에 육박할 정도로 좋은 실적을 내고 있다. 이번 위기에서 글로벌 경쟁회사들이 주춤하는 사이 전자, 화학, 자동차 관련 기업들은 시장점유율을 빠르게 늘리고 있다.
셋째, 경제위기 이후 항상 그러했듯 국가 간, 산업 간, 기업 간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최근 우리 주식 시장에 외국인 매수세가 지속적으로 몰리는 것은 금융위기 이후 한국 경제, 특히 제조업의 경쟁력을 재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많다. 즉 지금까지 저평가됐던 한국 주식이 이제 과거보다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북핵 문제가 해결되면 마지막 남은 할인 요소마저 사라질 것이다.
넷째, 대부분의 투자가들이 주가 급등을 전혀 예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마 이 원인이 최근 주가 급등에 가장 많이(?) 기여했을 것으로 보인다. 주요 기관투자가들은 1,400에서부터 끊임없이 주식 비중을 줄여 왔다. 주식시장이 워낙 심술궂은 놈이라 항상 다수의 예상과 반대로 움직인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새삼 놀랄 일도 아니다. 다만 지금은 놓친 주식에 대한 애통함보다는 보유하고 있는 주식에 대한 애정을 보일 때다. 강력한 경기반등이 실현된다면 대부분의 주식이 결국 ‘키 맞추기’를 할 확률이 높다. 시차를 두고 상승 종목군이 바뀌는 이른바 순환매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주식 시장의 속성이다. 공을 따라다니지 말고 제 포지션에서 공이 오기를 기다리면 득점 찬스가 있다. 그래야 요즘 유행어대로 ‘엣지’가 있다.
이상진 신영자산운용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