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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영]질기고 파란 바지 한 벌, 그 안에 세계 경제가

입력 | 2009-08-29 02:59:00


◇ 블루진, 세계 경제를 입다/레이철 루이즈 스나이더 지음·최지향 옮김/388쪽·1만4000원·부키

2004년 가을 미국 뉴욕의 ‘에던’이라는 유기농 청바지를 만드는 회사에 귀한 손님이 찾아왔다. 손님은 세계적인 평화운동가이자 영국의 록그룹 U2의 보컬인 보노. 그는 ‘친환경과 윤리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이 회사의 취지에 공감한다며 투자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회사 디자이너 로건 그레고리와 스콧 한은 패션을 통해 세계의 빈곤을 퇴치하겠다는 야망을 갖고 있다. 그들은 과학자들이 기후 변화의 심각성을 대중과 공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옷 한 벌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수많은 과정과 패션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애환을 소비자들과 공유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졌다.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이 디자이너들의 생각에 공감하고 여러 나라를 돌며 목화 생산부터 원단, 디자인까지 청바지의 분업화된 시스템과 거기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추적한다.

저자는 먼저 ‘목화의 메카’ 아제르바이잔으로 갔다. 그곳에서 저자는 이 나라에 불과 10명인 목화 감정사 가운데 한 명인 메만 후세이노프를 만났다. 2005년 이후 생산량이 늘며 목화 가격이 떨어져 아제르바이잔의 상황은 열악해졌다. 사람들은 목화 재배보다 의류를 만들어 팔아야 가난을 면할 수 있다는 걸 알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후세이노프는 “목화에 대한 열정이 누구보다 높지만 감정사를 그만두고 카페를 차리겠다”고 말했다. 또 목화 가공 공장의 근로자들은 솜과 씨를 분리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먼지를 단지 손으로 가리고 일해야 하는 열악한 상황이었다.

이탈리아에서 저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섬유회사 레글러의 수석 디자이너 파스칼 루소를 만났다. 한창 바빠야 할 시기에 루소는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며 심란해했다. 그는 “구치, 아르마니, 프라다 등 이탈리아의 패션 브랜드가 모두 섬유를 중국에서 조달하고 있다며 섬유 산업이 중국에 의해 잠식당하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명품 브랜드가 이미 중국에 공장을 차렸고, 이탈리아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중국에서 만들어진 ‘메이드 인 이탈리아’ 라벨이 달린 옷을 입고 있다”고 말했다.

캄보디아 시골 출신 소녀 나트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고향을 떠나 도시의 섬유공장에서 일했다. 그녀는 공장의 근무환경이 점점 열악해지지만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가족에게 말하지 않았다. 공장의 상황이 알려져 파업이 속출하면 외국인투자가들이 철수해 일자리를 잃을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저자는 청바지 염색제 문제도 제기한다. 인디고는 가장 흔한 청바지 염색제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공장은 천연 인디고 대신 1897년에 개발된 값싼 합성 인디고를 사용한다. 저자는 “염색과 탈색 과정에서 나온 유독물질이 선진국에서는 잘 정화되지만 상당수 개발도상국에서는 그대로 하천으로 흘려보내져 심각한 환경 문제를 낳고 있다”고 주장한다.

섬유 산업에 어두운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방글라데시 외국계 청바지 공장은 미성년자들을 적발하고도 해고하지 않고 학업을 병행할 수 있도록 교실을 마련해줬다. 저자는 “진지하게 수업을 듣는 노동자들을 보며 그들에 대한 투자가 일의 동기를 부여하고 회사의 자산을 키우는 데 기여한다는 사실을 실감했다”고 말한다.

저자는 다시 뉴욕의 청바지 회사 사무실로 돌아와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그레고리와 한의 뉴욕 사무실은 유엔을 방불케 한다. 저자는 “수많은 국가와 협력해서 옷을 만들고 있는 이곳을 보면 국경 없는 무역이 어떤 것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며 “보노 같은 든든한 후원자가 찾아오는 이곳의 사례를 통해 사회적으로 의식 있는 디자이너에게서 패션 산업의 희망을 본다”고 말한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