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제개편안 후폭풍 거세
전세보증금 소득세 과세
보증금 올라 세입자 타격
부가세 과세대상 확대도
물가인상 ‘양날의 칼’
정부가 25일 발표한 ‘민생안정 미래도약을 위한 2009년 세제개편안’이 거센 후폭풍에 휩싸였다.
기획재정부는 ‘친(親)서민’ 정책 기조에 맞춰 고소득층과 전문직 증세(增稅)에 초점을 맞췄다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서민층의 부담을 키울 수 있는 항목이 상당수 포함됐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물가 상승을 부추길 소지가 큰 정책도 적지 않아 당초 취지와 달리 서민생활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 서민 세금 부담 ‘2차 충격’ 우려
이번 세제개편안 가운데 부동산 세제 강화는 고소득층에 대한 ‘세금 그물망’을 촘촘히 하고 조세 형평성을 높이는 차원에서 도입했지만 결과적으로 서민 생활을 더 어렵게 할 수 있는 제도로 꼽힌다.
2011년부터 시행될 전세보증금에 대한 소득세 과세가 대표적이다. 집주인이 소득세 부담을 세입자에게 떠넘기기 위해 전세보증금을 높게 책정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재정부 당국자는 “3주택 이상 보유자로 한정하고 3억 원 초과분만 과세하기 때문에 세금 전가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면서도 “세금 부담을 떠넘기는 사례가 일부 있다고 하더라도 과세 정상화 차원에서 도입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상가 임대사업자에게 내년 7월부터 상가임대차계약서와 부동산임대공급가액명세서를 국세청에 의무적으로 제출토록 하고, 소유한 점포를 합산하는 방식으로 과세기준을 변경한 조항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하면 상가 임대사업자의 소득 탈루를 막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상가 주인이 늘어날 세 부담을 점포에 입주하는 영세 자영업자 등에게 떠넘길 가능성이 있다.
○ 장마저축 소득공제 폐지 재검토
세제개편안에는 세원(稅源)을 넓히고 탈세를 막을 수는 있지만 동시에 물가 인상도 유발하는 ‘양날의 칼’과 같은 조항이 곳곳에 포함돼 있다. 부가가치세 과세 대상을 자동차운전학원 등 성인이 주로 이용하는 사설학원 수강료와 애완동물 진료비 등으로 확대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부가세 과세의 사각지대를 없애 넓은 세원을 확보한다는 취지이지만 소비자는 수강료 등이 10% 정도 오르는 것을 감수해야 할 공산이 크다.
의료 법률 세무 등 고소득 전문직이 30만 원 이상의 서비스를 제공할 경우 영수증 발급을 의무화하고 이들의 탈세를 감시하는 세(稅)파라치 제도를 도입하기로 한 것도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당장 내년부터 늘어날 세금 부담과 영수증 발급 수수료를 얹어 관련 서비스 가격을 인상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또 정부가 내년 4월부터 대용량 냉장고와 에어컨, TV, 드럼세탁기 등 4개 가전제품에 대해 개별소비세 5%를 부과하면 해당 제품의 가격이 올라 소비자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장기주택마련저축(장마저축)에 대한 소득공제와 임시투자세액공제를 폐지하기로 한 데 대한 반발도 거세다. 은행권이 “장마저축의 소득공제 혜택이 사라지면 대규모 자금이 순식간에 이탈할 수 있다”며 반발하자 정부는 보완책을 마련하겠다고 한 발짝 물러난 상태다. 임시투자세액공제 폐지에 대해서도 경제단체 및 민간 경제연구소들이 “기업 투자를 위축시킬 것”이라며 잇달아 부정적 의견을 내놓아 정부를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한편 정부가 “세제개편안이 국회에서 원안대로 통과되면 10조5000억 원의 세수가 늘어나고 이 가운데 8조4000억 원(79.6%)을 고소득층과 대기업이 부담할 것”이라고 발표한 대목도 논란을 불러오고 있다. 10조5000억 원 가운데 금융회사의 채권 이자소득에 대한 원천징수분 5조2000억 원은 증세가 아니라 징수 시기만 2011년에서 내년으로 앞당긴 것이기 때문. 이를 제외하면 고소득층과 대기업의 부담은 79.6%에서 60.4%로 낮아지고 중산층과 중소기업 부담은 20.4%에서 39.6%로 늘어난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