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예술극장에서 열린 서울발레시어터의 ‘she, 지젤’ 공연에서 정혜령(지젤·왼쪽)과 하준국(알브레히트)이 연기를 펼치고 있다. 사진 제공 서울발레시어터
지금은 21세기인데도 고전 명작으로 불리는 발레와 오페라는 19세기의 산물이 대부분이다. 기존의 오페라를 현대적 연출로 재해석한다거나 발레를 전혀 다르게 안무하는 것은 제한된 레퍼토리를 극복하기 위한 방편이자 묵은 이야기를 오늘날에 통용할 만한 방식으로 바꾸는 작업이다.
서울발레시어터(단장 김인희)와 예술감독 제임스 전은 고전 발레 애호가조차 턱없이 부족한 척박한 환경에서 이 작업을 가장 먼저, 꾸준하게 지속해왔다. 이번에 재해석한 고전은 ‘지젤’이다. 원작은 철석같이 믿던 연인이 신분을 속인 귀족이란 걸 알게 된 시골 처녀가 실성한 채 죽고, 그 영혼은 복수심이 가득한 일종의 처녀귀신인 빌리의 일원이 되지만 무덤을 찾아온 옛 연인을 죽음으로부터 지켜낸다는 내용이다. 그 재해석으로는 시골 처녀가 죽지 않고 정신병동으로 들어간다고 설정한 마츠 에크의 ‘지젤’(1982)과 주인공을 짝사랑하는 힐라리온을 중시한 마르시아 하이데의 ‘지젤과 빌리들’(1989)이 유명하다.
제임스 전은 제목을 ‘she, 지젤’로 바꾸었다. 고전에서 착안하되 얽매이지는 않는다는 시각의 반영이다. 새로 태어난 지젤은 튀튀를 입거나 토슈즈를 신지 않았으며 고전적인 테크닉을 자랑하지도 않는다. 빌리의 군무는 사생아를 낳은 지젤이 어쩔 수 없이 찾아간 매음굴의 창녀들로 대체되었다.
줄거리는 원작보다도 어둡지만 삼각관계와 그 파탄, 광기, 용서와 구원이라는 주제는 살아 있다. 제임스 전의 안무는 육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고전 발레의 공식을 깨고 캐릭터와 그 주어진 상황에 맞췄다. 엽기적이라고 불리는 마츠 에크의 분위기조차 느낄 수 있었다. 특히 1부와 2부가 전혀 다른 설정임에도 불구하고 안무의 일관성이 유지된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문제는 드라마로서의 창조성이다. 지젤과 그의 연인이 알고 보니 이복남매란 것은 ‘막장드라마’의 설정이고, 창녀들은 동서고금의 인기 소재였지만 여장 남자를 추가한 것을 빼면 더는 신선함이 없다. 지젤의 모친을 사모했던 신부의 등장도 그 존재 이유가 약하다.
음악에도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대체로 오리지널 음악을 사용했지만 종종 삽입된 다른 곡들이 생뚱맞았다. 고전적 명작을 재창조할 때 음악은 원곡에 가까울수록 좋다. 그런 제약을 지키면서도 창조적인 결과를 끌어냈을 때 수준 높은 관객은 더욱 감탄한다. 안무가로서 제임스 전은 이미 국제적 수준에 도달해 있지만 드라마와 음악에 좀 더 세련미를 입힐 필요가 있다.
유형종 무용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