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 장기집권에 정치부패
불만 쌓인 유권자들 심판
민주 개혁-복지공약 먹혀
무당파 젊은층 대거 흡수
일본은 변화를 선택했다. 낡고 틀에 박힌 일본 대신 새롭고 젊은 일본을 택한 것이다. 54년간의 ‘자민당 체제’에 불만과 분노를 축적해온 국민의 선택은 무서울 만큼 냉정했다. 고도 경제성장이라는 역사적 임무에 충실했던 자민당이지만 새로운 시대의 국민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 대가는 가혹했다.
고인 물이 썩듯 자민당 장기집권의 폐해는 정치부패를 낳았다. 장기집권에 질린 국민은 공공연히 “이건 민주주의가 아니다”란 말을 자조적으로 내뱉곤 했다. 일본 국민은 이제 대국민 서비스와 복지 그리고 변화를 원했다. 민주당은 이런 국민의 열망을 정확히 읽고 개혁과 복지 공약으로 파고들었다.
사실 정권교체는 소리 없이 진행돼왔다. 민주당은 최근 몇 차례의 중·참의원 선거에서 승리를 향해 한 발짝씩 다가섰다. 2003년 중의원과 이듬해 참의원 선거에선 의석수로는 자민당에 뒤졌지만 비례대표 득표에선 앞섰다. 1993년 총선 이후 한 번도 단독 과반수를 채우지 못한 자민당은 공명당 등과의 연립 없이는 자력으로 정권유지가 힘들었다. 자민당이 압승한 2005년 총선은 자민당 하락 추세에서 예외적 현상이었다. 2007년 참의원 선거에선 민주당이 지역구와 비례대표 모두 압승했다. 당시 비례득표는 자민당(1654만 표)보다 670여만 표 많은 2326만 표였다. 7월 도쿄도의원 선거도 민주당이 대승했다.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은 유권자의 25∼30%로 추산되는 무당파층을 대거 흡수했다. 상당수는 최악의 취업난을 겪는 젊은층이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무당파층의 52%가 민주당을, 23%가 자민당을 지지했다.
수십 년간 자민당을 떠받쳐온 지방조직과 이익단체도 흔들렸다. 자민당에 조직표와 자금을 몰아주던 의사회 건설협회 농협의 상당수 지방조직이 자민당을 이탈했다. 자민당 거물들은 이를 뻔히 보면서도 백척간두에 몰린 자신의 지역구 선거 때문에 손을 쓰지 못했다. 정권교체라는 대의 아래 민주당과 사민당, 국민신당은 야당 후보의 난립으로 자민당이 어부지리를 챙기지 못하도록 후보를 조정했다. 이들 야3당끼리 경쟁한 선거구는 2005년 총선 때 46곳에서 이번엔 17곳으로 줄었다. 지역구 후보를 크게 줄인 공산당 지지자들도 대거 민주당으로 흘러들었다.
자민당으로선 세계 금융위기가 치명타였다. 실업자가 속출하고 월급봉투가 얇아진 책임은 고스란히 집권당의 몫이었다.
도쿄=윤종구 특파원 jkm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