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세 소년 아버지 살해현장. 출처 ABC
"아빠가 죽었어요."
27일 미국 뉴멕시코 주의 작은 도시 벨런.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한 오후 7시 경 경찰서에 한 통의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어린 소년의 신고를 받고 경찰은 즉시 현장으로 출동했다. 브리언 힐번 씨(42)가 자택에서 머리에 총격을 받아 피를 흘리며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처음엔 단순한 살인사건으로 여기며 현장수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외부인의 침입 흔적이나 격투로 인한 상해 등 주목할만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
더구나 피투성이가 된 힐번 씨의 시신 말고 집안에 있던 사람은 신고자인 아들 벤자민(10)과 여동생(6) 둘뿐이었다.
경찰은 벤자민에게 다가가 아버지가 어떻게 죽게 됐는지 물었다. 어린 소년은 "내 소총으로 아빠를 쐈다"고 털어놓았다.
"아빠는 잔소리가 너무 심했어요. 그리고 너무 자주 야단을 쳤어요."
열 살 소년 벤자민은 아버지의 머리를 총으로 쏴 살해한 혐의로 현재 한 보호시설에서 정신감정과 함께 조사를 받고 있다. 이름이 공개되지 않은 여섯 살 난 여동생은 오빠가 아버지를 죽이는 과정을 옆에서 고스란히 목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벤자민의 남동생(9)은 당시 친척집에 가 있어 집에 없었다.
지역 언론인 KOAT-TV 등 외신들은 가족 간 불화와 뉴멕시코 주의 허술한 총기 허가정책이 낳은 힐번 씨 가정의 끔찍한 스토리를 연일 톱뉴스로 보도하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힐번 씨는 2005년 아내와 이혼한 뒤 그동안 세 아이를 직접 키웠다. 그러나 이들 가족은 "아이들이 학대당하고 있다"는 익명의 신고가 접수돼 2003년부터 7차례에 걸쳐 뉴멕시코 주립 아동청소년가족부의 조사를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힐번 씨 가정을 방문조사 했던 로메인 서나 씨는 "(신고를 받고) 이 가족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여겨 우려가 컸지만 다른 가족이나 친구,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교 교사 등 주변 인물들은 한결같이 '힐번 씨는 별 문제 없는 가장'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웃들은 "평소 인사도 잘하고 행복해 보이는 가족이었다"며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외신은 전했다.
서나 씨는 또 "아이들의 몸에선 폭력으로 인한 타박상도 전혀 없었다"며 남매를 아버지 곁에서 강제로 떼어내 보호시설에 보낼만한 증거가 충분하지 않아 조사가 중단됐다고 전했다.
그는 그러나 힐번 씨 집을 방문했을 때 이상한 점을 한 가지 발견했다고 덧붙였다. 어린 아이들도 함께 사는 집안 곳곳에 각종 총기가 가득했다는 것. 서나 씨는 "힐번 씨 가족에겐 총이 일종의 오락이었다"면서 "총 쏘는 것에 미친 사람들 같았다"고 전했다.
뉴멕시코 주에선 18세 이하 미성년자의 총기 소유만 규제된다. 그러나 부모의 동의가 있으면 나이 제한 없이 누구나 총을 가지고 사용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벤자민은 평소 총 마니아인 아버지로부터 총기 사용법 등을 직접 배웠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 총기 사건이 잇따르는 가운데 10세 소년이 집안에서 자신의 소총으로 아버지를 쏴 죽인 것을 두고 총기규제 논란에 다시 불이 붙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