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채무 줄이려면 조세수입 늘려야
해마다 반복되는 세제개편안에 대한 논란이 올해는 유달리 심한 듯하다. 현 정부가 하는 일이면 무조건 반대하는 사람들은 물론 이슈마다 양산되는 사이비 전문가까지 가세하여 논쟁이 뜨겁다. 쇠고기 파동 때처럼 소모적 논쟁이 되는 현상을 막기 위해서라도 한번쯤 이번 개편안을 정당하게 평가해야 한다.
우리 경제가 당면한 큰 문제는 재정건전성이다. 노무현 정부 동안 2배 이상 급증한 국가채무는 현 정부에서 다시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규모가 작은 우리 경제에서 과다한 국가채무는 국가신용의 위기를 초래한다. 따라서 과정이 어쨌건 재정건전성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할 수는 없다.
다행히 최근 경기지표는 내년도 경제에 긍정적 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아직 상황을 낙관할 수 없기 때문에 정부지출을 섣불리 줄일 수는 없다.
결국 정부지출 축소가 아닌 조세수입 증대를 통해 재정건전성을 개선할 수밖에 없다. 금번 세제개편안이 증세 위주로 편성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증세는 누구를 대상으로 하나. 기업에서는 대기업, 계층적으론 고소득층일 수밖에 없다. 이들은 감세정책의 수혜자이며 경제위기에도 상대적으로 양호한 상태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 사실을 근거로 정권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세계 어디에도 대기업과 고소득층이 그냥 좋아서 이들을 위한 정책을 펴는 정부는 없다. 다만 이들이 경제의 선도 집단이므로 유인하는 정책을 펼 뿐이다. 정체성에 대한 의문은 보수라면 무조건 대기업과 고소득층을 옹호해야 한다는, 터무니없는 오해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일각에서는 증세가 결국 중산·서민층의 부담으로 전가된다고 비판한다. 개편안의 일부 내용, 예를 들어 전세보증금에 대한 과세는 그런 우려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소비세나 부가가치세 신설은 옳은 방향인 만큼 우려되는 부작용은 가격관리를 통해 보완해야 한다. 세금우대저축도 그동안의 부작용이나 금융 여건을 감안한다면 축소하는 방향이 맞다.
물론 이번 세제개편안에도 문제는 있다. 조세를 통해 중산·서민층을 지원하는 데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 세 부담이 낮은 계층에 세금을 깎아주는 것은 효과가 적다. 최저한세율을 재인상하는 바람에 어중간해진 법인세율 체계를 어떻게 조정해 나갈지도 밝힐 필요가 있다. 이 모든 논리의 전제에는 현 정부의 개인 및 법인소득세율 인하정책이 계속 추진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정책의 일관성과 시장의 확실성을 위해서도 불가피하다. 이런 측면에서 감세의 포기가 아닌 부분 증세를 통해 재정건전성을 개선하려는 이번 개편안이 최선은 아니더라도 차선은 된다고 평가하고 싶다.
임주영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
정부 인력감축-민영화로 지출 줄여야
국가의 흥망성쇠는 재정 조세정책에 크게 좌우된다. 세금에 얽힌 동서양의 역사를 풀어낸 ‘세금 이야기’를 읽으면서 느낀 소감이다. 고대 아테네에서는 세금보다는 부자의 기부금으로 국가재정을 운영했다. 아테네의 기부금 제도는 도시를 영화롭게 하고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고, 전쟁에 소요되는 물자를 공급하기 위해 부자가 자발적으로 재정부담을 담당하는 선의의 동기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후기로 갈수록 부자를 착취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고대 그리스의 변론가이자 수사가인 이소크라테스의 말에서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알 수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그들의 소유를 숨기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법률을 위반하기보다 부자라고 불리는 것이 더 위험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가난을 탄식하고 다른 사람들은 국가가 그들에게 부여한 무거운 세금 때문에 탄식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부자 감세라는 정치적 구호에 여야 할 것 없이 눈치 보기에 바쁘다. 부자는 불법, 탈법, 정경유착, 부동산 투기를 통해 부를 축적했을 것이라는 국민정서가 강하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전형적인 포퓰리즘이고 근시안적인 시각이다.
부자와 대기업에 과도한 세부담을 줄 경우 노동공급이 줄고 투자재원이 부족해져 국가경쟁력이 떨어진다. 또 자본자유화에 편승하여 국부가 국외로 유출된다. 자본과 우수인력의 유출이 많아지면 성장이 둔화되고 일자리가 줄어든다. 서민 생활 안정을 위해 더 많은 돈이 필요하고 이는 다시 부자와 대기업의 세 부담으로 이어진다. 악순환이 지속되면 부자로 살기도, 서민으로 살기도 고통스럽다.
이명박 정부의 ‘작은 정부, 큰 시장’은 역사적 교훈에 비춰볼 때 국가 번영을 이룰 정책으로 평가할 수 있다. 공기업 민영화, 정부 조직 개편과 인력 감축을 통해 지출을 줄이고 세금을 인하하여 시장의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것이 이명박 정부의 정책기조였다. 진정 서민을 위한 정책이고 국가 번영을 위한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영국을 세계 최대 강국으로 만든 엘리자베스 1세 때의 재정, 조세정책이 이와 같았다. 그는 엄청난 부채를 안고 즉위했으나 철저한 예산관리로 15년 만에 부채를 완전히 청산했다. 또 유럽에서 가장 낮은 세율을 유지했다. 당시의 세금정책은 “나는 그 돈(세금)이 국고에 들어와 있는 것보다 나의 신민들의 호주머니에 보관되어 있는 것을 좋아한다”라는 여왕의 말로 잘 집약된다.
부자를 위한 감세, 부자를 대변하는 정권이라는 정치논리에 막혀 이명박 정부의 정책기조 변화가 감지된다. 서민생활 안정을 위해 지출을 늘리고 필요한 재원을 부자와 대기업에 대한 세금 인상을 통해 조달하려는 정책으로 변하고 있다. 아테네와 엘리자베스 1세의 재정, 조세정책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자.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