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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만에 이루어진 조수미와 빈필의 약속

입력 | 2009-09-02 16:05:00


너무 화려해서 눈을 뜨지 못할 것만 같다. 조수미란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벅찬데 빈필하모닉이라니. 여기에 주빈 메타라니!

조수미와 빈필하모닉은 애틋한 인연이 있다. 알려져 있듯 20세기 ‘지휘의 신화’ 카라얀은 조수미를 매우 아꼈다. 카라얀으로부터 ‘신이 내린 목소리’란 극찬을 들은 인물이 과연 몇이나 될까. 여기에 덧붙여 그는 조수미를 두고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목소리’라고도 했다. 조수미의 성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국보다.

카라얀은 1989년, 조수미를 초청해 빈필하모닉과 협연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공연은 아쉽게도 무산. 공연을 앞둔 카라얀이 급서해버린 탓이었다.

조수미는 카라얀과의 협연 대신 게오르그 솔티 경과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베르디 오페라 ‘가면무도회’에서 오스카 역으로 출연했다. 이 공연은 ‘잘츠부르크의 카라얀’이란 제목의 영상물로 출시돼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 비디오를 본 세계 최정상의 지휘자들이 조수미를 향해 숱한 러브콜을 던졌다. 그 중 한 명이 바로 마에스트로 주빈 메타였다.

카라얀과 약속했던 빈필하모닉과의 협연. 20년 전의 약속이 마침내 한국에서 이루어진다. 카라얀 대신 주빈 메타가 지휘봉을 잡지만, 그 감동은 20년 전에 비해 조금도 감퇴되지 않는다.

두 사람은 연주 레퍼토리도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골랐다는 후문이다. 그 결과 요한 스트라우스의 ‘박쥐’ 중 ‘여보세요 후작님’, 베르디 ‘라트라비아타’ 중 ‘아, 그이인가? … 언제나 자유라네’가 선택됐다.

빈필하모닉은 상임지휘자를 두지 않는 독특한 전통이 유명하다. 악단의 독립성을 보존하기 위함으로 빈필만의 고집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한 마디로 지휘자의 개성에 휘둘리지 않고, 빈필 고유의 연주기법과 음색을 지켜나가겠다는 의지다.

빈필은 대신 매년 지휘자를 초청해 지휘봉을 맡긴다. 세계 음악계는 ‘과연 올해는 누가 빈필을 이끌 것인가’에 뜨거운 관심을 보낸다. 올해 빈필의 선택은 주빈 메타였다. 주빈 메타는 2001년 빈필의 명예지휘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번 내한 공연에서 주빈 메타와 빈필은 하이든의 후기 교향곡 ‘런던(104번)’과 브람스의 교향곡 4번을 준비했다. 브람스의 4번은 가을의 서늘한 정서가 일품인 명곡.

윤기가 잘잘 흐르면서도 유연한 현놀림이 곡의 생명을 쥐고 있다. 세계 최고의 현악군단을 ‘장착’하고 있는 빈필의 연주라면 믿지 않을 도리가 없다.

더욱 반가운 소식은 이번 공연이 전문공연장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개최된다는 것. 초대형 공연의 경우 높은 개런티와 제작 여건으로 인해 왕왕 대형 경기장에서 열려왔다.

당연한 얘기지만 경기장은 운동경기를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반사음이 심해 거장들의 노래와 연주조차 속칭 ‘목욕탕 사운드’에 묻혀 버리기 일쑤였고, 심지어는 공연 중 비행기 소음이 들리기도 했다.

이번 공연은 현대카드 슈퍼콘서트의 여섯 번째 프로젝트이다. 2007년 디보로 시작해 비욘세, 빌리 조엘, 플라시도 도밍고, 크렉 데이빗이 줄줄이 한국 슈퍼콘서트 무대에 올랐다. 아쉽게도 다섯 번 모두 전문공연장이 아닌 경기장에서 공연이 이루어졌다.

후원사의 ‘쉽지 않은 결정’으로 빈필의 공연은 ‘경기장’이 아닌 ‘공연장’에서 열린다. 무대에 오르는 연주자들은 ‘경기’가 아닌 ‘공연’을 할 수 있게 됐다. 공연 티켓 역시 합리적인 수준에서 가격이 매겨졌다. 가장 저렴한 B석이 7만원, 가장 비싼 VIP석은 35만원이다.

8월 31일 오후 2시, 티켓이 오픈되자마자 55분 만에 전석 매진됐다. 이번 공연에 대한 국내 음악팬들의 관심과 애정이 얼마나 ‘핫’한지 실감이 나는 대목이다. 공연소식이 전해지면서 티켓 예매를 시작하기도 전에 주관 기획사와 티켓 예매처들은 문의 전화로 상당한 곤욕을 치렀다는 후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목소리를 지닌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조수미.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면서도 인간적인 지휘를 하는 주빈 메타.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연주력을 지닌 빈필의 만남.

우리 시대에 또 다시 이런 음악적 황금률을 만날 수 있게 될까. 정녕, 영혼이라도 팔아 보고 싶은 공연이다.

9월29일(화) 8시|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사진제공|현대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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