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공연]‘지킬 앤 하이드’ 영어공연 20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입력 | 2009-09-03 02:56:00

국내 첫 원어 공연인 ‘지킬 앤 하이드’에서 열연을 펼친 브래드 리틀이 각각 선을 대변하는 지킬(왼쪽)과 악을 대변하는 하이드로 변신할때 모습을 합성한 사진. 사진 제공 쇼팩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에서 각각 지킬의 사랑인 정숙한 에마 역의 루시 몬더(왼쪽)와 하이드의 짝인 육감적인 루시 역의 벨린다 월러스턴이 이중창을 부르는 장면. 사진 제공 쇼팩


환희와 공포 넘나드는 자이언트 ‘리틀’
‘지킬 앤 하이드’ 영어공연 20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권투에 비유하자면 라이트급 경기를 보다 헤비급 경기를 보는 느낌이었다. 국내 첫 원어공연으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는 그만큼 묵직했다.

그 중심엔 주역을 맡은 브래드 리틀이 있다. 190cm의 장신인 그가 연기한 ‘리틀 지킬’은 이름과 달리 한국어 공연의 어느 지킬보다도 크고 무거웠다. 40대 중반인 그는 가장 늙은 지킬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정확한 발성, 성숙한 연기 그리고 청중을 휘어잡는 가창력으로 무대를 압도했다. 마치 ‘브로드웨이의 톰 행크스’를 보는 듯했다.

큰 체구에 비해 선량한 이미지로 톰 행크스를 연상시키는 그가 지킬 박사를 연기할 때는 진중함과 신뢰감이 배어났다. 프롤로그에서 “알아야 해 저 영혼을 지배한 악의 본성을/왜 인간은 어둠에 무릎 꿇는가/왜 미쳐 살인을 즐기는 걸까”라며 ‘니드 투 노’를 부를 때 객석은 전율했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을 가득 채우는 성량에서 음악적 흥분을 예고하는 엔도르핀의 분비를 맛보았기 때문이다.

선 굵은 노래-연기력 관객 사로잡아
육감적 루시, 정숙한 에마 긴장감 팽팽
육중한 무대세트-관능적 안무 볼만

‘리틀 지킬’은 관객의 이런 반응을 읽어내고 함께 즐길 줄 아는 여유도 보여줬다. 유명한 ‘지금 이 순간’의 절창이 끝난 순간 그는 30초 가까이 동작을 멈췄다. 관객의 열렬한 갈채의 여운을 함께 만끽하려는 배려였다.

그런 청각적 전율은 곧 시각적 전율로 바뀐다. 거대한 체격의 그가 연쇄살인마 하이드로 변신했을 때 관객은 숨을 멈추고 엄청난 아드레날린의 분비를 체감한다. 마치 이종격투기의 간판스타 표도르, 그것도 미친 표도르와 마주쳤을 때와 같은 공포감을 조성하기 때문이다.

‘지킬 앤 하이드’의 묘미는 선악의 지평을 넘나드는 시각적 ‘멀리뛰기’ 및 고음의 지킬과 저음의 하이드를 표현하는 청각적 ‘높이뛰기’에 있다. ‘리틀 지킬’은 그 두 가지에 있어서 양 극단 사이에 얼마나 스펙터클한 공백이 존재하는가를 절감하게 해준다.

하지만 거기엔 약점도 존재한다. 스윙이 크면 균형 잡기가 쉽지 않은 법. “나의 끝은 지킬인가 하이드인가”를 부르며 지킬과 하이드가 한몸에서 싸움을 벌이는 장면에서 ‘리틀 지킬’은 한국의 지킬에 비해 전환속도가 떨어져 그 독특한 묘미를 살리지 못했다.

이번 공연(연출 존 디드리흐, 안무 조앤 로빈슨)은 엄밀히 말해 브로드웨이 원작 그대로의 공연은 아니다. 한국과 호주에서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고 아시아시장을 겨냥해 새롭게 제작한 공연이다. 레슬리 브리커스의 대본과 프랭크 와일드혼의 노래는 원작 그대로지만 무대 세트와 안무는 새롭게 제작했다.

무대는 미니멀한 원작 무대에 비해 지킬의 지하 실험실로 이어지는 2층 벽돌 층계 세트를 추가하는 등 육중한 느낌이 강했다. 지킬을 흠모하지만 하이드에게 학대당하는 창녀 루시가 빨간 줄의 공중그네를 타고 등장해 춤을 추는 장면을 비롯해 안무는 한층 관능적이었다.

브래드 리틀을 제외한 출연자는 호주 배우들인데 노래와 연기 모두 탄탄했다. 특히 육감적인 루시 역의 벨린다 월러스턴과 지킬의 약혼녀인 정숙한 에마 역의 루시 몬더는 빼어난 가창력과 연기로 팽팽한 성적 긴장감을 구축해냈다.

헤비급 경기와 비교하다 보면 라이트급 경기의 묘미도 재발견하게 된다. 지킬과 하이드로 전환하는 빠른 속도감, 지킬의 실험실에서 관객의 얼굴까지 비치는 대형 거울을 활용해 지킬의 내적 분열을 묘사한 장면, 지킬이 홀로그램으로 투영된 아버지의 초상화를 뚫고나오는 장면 등은 이번 공연에서 맛볼 수 없다. 2만2000∼14만 원. 20일까지. 1544-1555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동영상 제공: 쇼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