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동산에서의 최초 사랑에 대한 상상력을 무대로 옮긴 연극 ‘논쟁’의 한 장면. 사진 제공 문화기획 연
극단 서울공장 ‘논쟁’ 전라연기 화제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두 남녀 사이에 논쟁이 벌어진다. ‘남자와 여자 중에 먼저 변심하는 쪽은 누구인가.’ 남자는 여자를 데리고 밀폐된 공간으로 들어선다. 그곳에선 실험이 18년째 진행 중이다. 갓난아기 때부터 홀로 격리된 채 자란 남녀 4명이 서로 처음 만나게 됐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4명은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처럼 원초적 순수함을 간직하도록 나체로 키워졌다. 의사소통을 위한 최소한의 언어교육과 인간적 정서를 갖추기 위한 음악교육만 받았을 뿐이다.
남녀배우 넷이 전라연기를 펼친다고 해서 화제를 모은 극단 서울공장의 ‘논쟁’은 이런 구도에서 출발한다. 18세기 프랑스 극작가 피에르 드 마리보(1688∼1763)의 원작은 궁정이 배경이다. 그러나 국내 초연인 이번 무대에선 실제의 연극 제작 스태프가 좌우에 진을 치고 있는 스튜디오 형태의 현대적 실험실로 바뀐다.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남녀가 객석 맞은편에 숨어서 훔쳐보는 가운데 나(윤채연)와 누(윤길), 너(이은주)와 우(최규화)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차례로 등장한다. 여자인 나와 남자인 누는 첫눈에 서로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며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곧 다른 여자인 너와 다른 남자인 우를 만나면서 처음의 감정은 변질된다.
오랫동안 전라연기를 준비해 온 덕분인지 배우들은 군살 없는 몸매를 과시하며 자유롭게 뛰논다. 긴장하는 쪽은 오히려 관객이다. 스튜디오 뒤편에 숨어 마른 침을 삼키면서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훔쳐보는 두 남녀는 곧 관객의 분신이다.
그러나 80분 공연시간 중 이 같은 긴장의 시간은 10분을 넘지 않는다. 여자인 나와 너가 “너는 왜 나의 아름다움을 찬미하지 않니”라며 질투심에 사로잡히는 반면 남자인 누와 우는 “너는 매력은 없지만 같이 있으면 좋다”며 함께 뛰는 장면에서 웃음이 터진다.
연출가 임형택 서울예대 교수는 “날것 그대로의 원초적 사랑과 사회화로 잘 다듬어진 현대적 사랑을 비교해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작품 속 벌거벗은 사랑은 옷을 입은 사랑과 다를 바 없다. 남자는 ‘새것’에 대한 갈망으로 다른 여자를 탐하고, 여자는 다른 여자에 대한 질투심으로 다른 남자를 탐한다.
그것마저 사회화의 결과라 한다면 날것의 사랑이란 결국 공상에 불과하다. 또한 18세가 될 때까지 이성을 몰랐던 사람의 입에서 어떻게 사랑, 매력, 질투와 같은 단어가 술술 나올 수 있을까. ‘전라연기’가 아니라 예술적 완성도로 평가받기 위해 이 작품이 좀 더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20세 이상 관람가. 13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16∼27일 동숭소극장. 02-923-1810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