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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이야기]誦詩三百하되 授之以政에 不達하며…

입력 | 2009-09-03 02:56:00


선인들은 외국에 사신으로 나가는 사람에게 격려의 시문을 쓸 때면 ‘논어’ ‘子路(자로)’편의 이 章을 인용하고는 했다. 실은 공자의 이 말은 학문의 실용성을 강조한 말이어서 주의 깊게 읽어야 한다.

誦詩三百은 시 삼백 편을 왼다는 말이되, 여기서의 시는 ‘시경’의 시를 말한다. ‘시경’의 시는 오래전부터 305편이었지만 대개 詩三百(시삼백)이라고 일컬었다. 授之以政은 시 삼백을 외는 그 사람에게 정무를 맡긴다는 말이다. 達은 정치의 도리에 환한 것을 뜻한다. 使於四方은 사방 다른 나라로 사신 가는 것을 말한다. 專對는 외국에 사신으로 나가 독단으로 대응하는 것을 말한다. 奚以爲는 ‘어디에 쓰겠느냐’이다.

시는 그것으로 백성의 마음을 살필 수 있고 군주의 마음을 바로잡을 수 있으므로 ‘시경’ 공부는 정치에 응용할 수 있었다. 또 외교의 장에서 시를 외워 자기 속내를 넌지시 알리는 일이 많았으므로 지식층은 ‘시경’ 공부를 매우 중시했다. 따라서 시를 배우고도 정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사절로 나가 현안을 홀로 처리하지 못하면 시 공부는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북송의 程이(정이)는 ‘경전을 궁구하는 것은 장차 致用(치용·실지에 씀)하고자 해서다’라고 했다. ‘주역’ ‘繫辭傳(계사전)’에서는 ‘자벌레가 몸을 굽히는 것은 장차 펴기 위함이요, 의리를 정밀히 연구하여 신의 경지에 드는 것은 장차 쓰이기 위함이다’라고 했다. 致用의 범위를 한정할 수는 없지만 공부가 반사회적이거나 몰가치적이어서는 致用이라 할 수 없으리라.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