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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세상/박석재]드라마 선덕여왕과 천문학

입력 | 2009-09-03 02:56:00


세계사를 살펴보면 한 나라가 융성할 때는 반드시 천문학도 발전했다. 천문학이 상징적인 제왕의 학문일 뿐 아니라 항해술과도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천문학의 중요성을 TV 드라마 ‘선덕여왕’이 잘 홍보해준다. 제작진은 일식과 월식은 물론 북두칠성 꼬리 끝에서 두 번째 별이 두 개라는 사실까지도 잘 이용한다. ‘사다함의 매화’가 책력이라는 대목에서는 제작진에게 당장 감사패라도 증정하고 싶은 것이 필자의 심정이었다.

북두칠성 꼬리 끝에서 두 번째 별이 두 개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1만 원권 지폐를 꺼내 뒷면을 보라. 혼천의 우측 상단을 보면 톱니바퀴가 있는데 오른쪽에 국자 모양으로 배열된 별이 북두칠성이다. 끝에서 두 번째 별 옆에 바짝 붙은 작은 별을 찾았는가? 소름이 끼치지 않는가? 우리나라가 이런 나라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일식과 월식이 너무 빨리 진행된 점은 ‘옥에 티’다. 월식 때 지구 그림자가 달의 왼쪽부터 가리기 시작해야 하는데 오른쪽부터 가리기 시작한 장면도 드라마니까 넘어가 줄 수 있다. 월식을 올려다보는 사람의 주위에 빗물이 떨어지는 장면은 꼭 바로잡았으면 한다. ‘대장금’처럼 한류 드라마로 만들어 국위 선양을 해야 하니까 말이다.

일식이나 월식 같은 천문 현상이 삼국시대에만 중요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예를 들어 2007년의 경우 정부가 남북 정상회담을 8월 28일에 개최한다고 발표했었다. 그날은 개기월식이 예보된 날이라 필자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필 노무현 대통령이 휴전선을 넘어 북한으로 가는 날 붉은 달이 뜨냐 말이다. 정상회담이 10월로 연기되는 바람에 필자의 기우는 사라졌다.

‘선덕여왕’의 효과는 한류 정도로 그치지 않을 것 같다. 어차피 드라마에서 부각될 첨성대를 테마로 경주시에서는 천문공원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대동강 물도 팔아야 되는 세상에 이처럼 하늘의 별을 파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대전시는 지난달 29일부터 30일까지 갑천에서 ‘별과 사랑을 쏘다’라는 주제로 견우직녀 축제를 성황리에 열고 본격적인 국제우주대회 준비에 들어갔다. 개막식에서 ‘선덕여왕’ 주제곡과 함께 밤하늘을 날아다닌 ‘불새’의 모습은 모든 사람의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제주별빛누리공원과 서귀포천문과학관을 가진 제주도의 경우도 그동안 추진한 홍보 전략에 ‘별이 반짝이는 섬 제주(Starry Island Jeju)’ 같은 개념을 추가하면 어떨까. 누구나 별빛이 쏟아지는 곳은 가보고 싶은 원초적 욕구가 있지 않은가.

필자는 세계 천문의 해를 맞아 부분일식이 예고된 7월 22일 우리나라 날씨가 맑기를 학수고대했다. 늘어진 장마 한복판이라 희망이 없어 보였지만 하느님이 보우하사, 앞뒤로 비가 오거나 흐렸는데도 그날만은 제주도까지 맑았다. 그리하여 이명박 대통령부터 어린이까지 온 국민이 부분일식을 볼 수 있었다. 필자의 눈에는 일식을 올려다보는 대통령의 홍보 사진이 다른 어떤 장면보다 의미심장해 보였다.

‘선덕여왕’이 주는 교훈처럼 예나 지금이나 하늘을 알려고 하고 하늘을 두려워하는 정치가만이 나라를 융성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아귀다툼만이 머릿속을 꽉 채운 듯이 보이는 사람이 어떻게 멀리, 크게 내다보고 나라를 경영하겠는가. 세계 유일의 우주론 국기인 태극기, 문자 메시지를 보내기에 가장 쉬운 글자인 한글, 경복궁에 보존한 천상열차분야지도, ‘하늘이 열린 날’이란 뜻을 가진 개천절 등을 물려준 조상에게 정말 감사드려야 한다. 그나저나 우리 땅에서 개기일식이 일어날 2035년 9월 2일 날씨가 맑아야 하는데 걱정이다.

박석재 한국천문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