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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유치환… 양주동… 기인들이 그립소”

입력 | 2009-09-04 06:40:00


문단원로 김원중 교수 27명의 삶 다룬 책 내
“기인들, 가치관 뚜렷하고 일관되게 일 추진”

“지금의 경상감영공원 자리에 경북도청이 있을 때였다. 하루는 향촌동 입구에서 우연히 유치환 교장 선생(당시 대구여고)과 마주쳤다. ‘어디가노? 시간 있으면 막걸리 한잔할래?’ 나는 별 바쁜 일도 없고 해서 선생을 따라갔다…그 웃음이 정말 매력적인 유치환 선생이 1967년 2월 13일 밤 부산에서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이 때문에 전국적으로 큰 혼란이 있었다. 다음 날 전국에서 치러진 중학교 후기 입학시험 국어문제에 ‘다음 시인들 가운데 생존시인은 누구인가’가 나왔는데 한용운, 김소월, 윤동주, 유치환 중에서 유치환 선생이 정답이었기 때문이다…대시인이면서도 좋은 시 나쁜 시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하시던 선생이 그리워진다.”(84쪽)

대구와 경북 지역 문단 원로인 김원중 포스텍 명예교수(73·대구 수성구 범어동·사진)가 최근 ‘사람을 찾습니다-기인이 그리운 세상’이라는 에세이집을 펴냈다. 그는 고교(대구 오성고) 3학년 때 첫 시집 ‘별과 야학’을 유치환의 서문을 받아 펴낸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5권의 시집과 수필집, 문학론 등을 집필했다. ‘기인(奇人)’을 그리워하는 이 책은 가벼운 수필이 아니라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기인들의 삶을 다룬 일종의 다큐멘터리. 그가 생각하는 기인은 단순히 별나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깊이 추구해야 할 어떤 보편성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고교생 때부터 대학교수(영남대, 포스텍)를 할 때까지 겪었던 27명의 삶을 그리운 마음으로 정리했다. 별명이 ‘살아있는 옥편’으로 불린 장철수 경북대 교수를 비롯해 이상화 시인의 동생인 이상백 박사, 대구에서 마지막 강연을 했던 자칭 국보 양주동 박사, 지성과 야성이 가득 찼던 조지훈 시인, 대구 아동문학계의 대부 이응창 원화여고 교장, 한국 제일의 보헤미안 박훈산 시인, 술과 문학으로 세월을 보낸 최광열 평론가, 한국문단의 거목 김동리 선생 등의 특이했던 일상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그는 2002년 포스텍에서 정년퇴임을 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뇌중풍(뇌졸중)으로 쓰러졌다. 2년 전에는 집에서 넘어져 다리를 다쳐 목발이 없으면 걷기 어렵다. 그는 3일 “쓰러지고 넘어지고 했지만 ‘읽고 쓰는’ 일은 그칠 수 없었다. 그 덕분에 건강도 찾았고 틈틈이 강의도 더 열심히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죽는 날 아침까지 뭔가를 썼다고 하는 영국의 저명한 사상가 버트런드 러셀(1872∼1970)을 닮고 싶다고 그는 덧붙였다. 안동남후초교 5학년 때 아버지가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는 유언과 함께 준 연필 두 자루에 대한 추억 때문인지 지금도 원고지에 연필로 글을 쓴다.

“기인이 정말 그립소. 돌아보면 위대한 문학과 예술, 과학과 철학을 창조하고 발전시킨 사람들은 대부분 기인 아니었습니까. 이런 기인들은 자기 삶에 대한 뚜렷한 가치관을 세우고 일관되게 밀고 나갔는데, 읽고 쓰고 생각하는 자세가 없으면 불가능하겠지요. 이 책을 쓰면서 내내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김 교수는 19일 오후 3시 대구 교보문고에서 저자사인회를 연다.

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