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 왕을 꾸짖다/신두환 지음/484쪽·1만9500원·달과소
상소(上疏)는 목숨을 건 글이다. 임금의 잘못을 따지거나 임금에게 직언을 하려면 그 무게를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안동대 한문학과 교수인 저자는 이런 이유로 상소의 문학적, 역사적, 사상적 가치를 들여다본다. 저자는 우리 역사에서 눈여겨볼 만한 상소 22편을 소개하고 해설을 붙였다.
저자가 먼저 소개한 명문장은 통일신라시대 설총이 신문왕에게 올린 ‘화왕계(花王戒)’. 설총은 화왕계를 통해 화왕, 장미, 백두옹을 각각 왕, 간신, 충신에 비유해 왕에게 통치자로서 바른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고 충고했다. 저자는 화왕계의 문학적 가치가 뛰어나다고 평가한다.
고려 때 우탁은 충선왕의 잘못을 따지기 위해 ‘지부상소(持斧上疏·도끼를 메고 올리는 상소)’를 올렸다. 당시 감찰규정을 맡은 우탁은 왕이 아버지 충렬왕의 후궁이었던 숙창원비와 눈이 맞았다는 소식을 듣고 도끼를 메고 대궐로 들어가 글을 올렸다. 그는 보편적인 윤리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진언했다.
1876년 일제의 강압으로 맺어진 병자수호조약 체결에 앞서 최익현(사진)이 올린 ‘병자지부상소’, 임진왜란 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정명가도(征明假道·명나라를 칠 테니 길을 내 달라)’를 요구하자 그 글을 들고 온 일본 사신의 목을 베라고 청했던 조헌의 글을 꼽았다.
조선 세종 때 집현전 부교리를 지낸 양성지는 ‘비변십책(備邊十策)’을 통해 국방을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조선의 지리적 특성으로 볼 때 산성은 강대국의 침입에 맞서 지구전을 펼칠 수 있는 근거지이기 때문에 전국에 산성을 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30만 양병설도 도모했는데, 이는 당 태종이 고구려를 칠 때 12만 명을 동원한 사실 등 여러 전쟁사를 연구해 작성한 것이다. 양성지는 훗날 정조로부터 상소 문장이 가장 뛰어난 사람으로 꼽히기도 했다.
퇴계 학맥의 종점이란 평가를 받는 유학자 곽종석은 1905년 고종에게 을사늑약의 폐기와 조약에 관여한 매국노를 처형하라고 했다. 그는 고종이 내린 벼슬을 거부하다가 임금을 독대하고 나라를 바로 세울 방책을 제시했다. 군사 체제를 확립하고 국가 재정확보를 위해 절약해야 한다는 등 4가지이다. 이후 그는 이름을 바꾸고 칩거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다.
저자는 곽종석의 상소와 한일강제합방을 건의한 이용구의 상소를 대조한다. 이용구는 이 상소에서 일본의 강력한 군사력과 선진문명을 조선의 힘으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그의 상소문을 읽으면 당시 친일파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잘못된 지식인의 모습을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다”고 말한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