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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모처럼 말문 열다…던진 메시지는

입력 | 2009-09-06 16:16:00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가 5일(한국시간) 캐나다 캘거리의 제40회 국제기능올림픽 경기장을 둘러보며 기능인력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는 결국 제조업이고 제조업의 힘은 현장에 있으며 현장의 경쟁력은 기능인력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삼성그룹 이건희 전 회장의 외아들인 이재용(41) 삼성전자 전무가 모처럼 말문을 활짝 열었다. 캐나다 캘거리에서 삼성전자의 후원으로 열리는 제40회 국제기능올림픽 경기장에서다.

이 전무는 4일 오전 5시경 전용기편으로 캘거리에 도착해 오전 7시50분경 기능올림픽 경기장인 스탬피드 파크를 찾았다. 기능올림픽에 참가한 우리나라 선수들을 격려하기 위해서였다.

7일 폐막하는 캘거리 기능올림픽에는 9개 직종에서 삼성전자 3명, 삼성중공업 4명, 삼성테크윈 3명 등 삼성그룹 직원도 10명이나 국가 대표로 출전했다.

그는 "여러분이 여기 캐나다까지 와서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여 주고 있다"며 선수단을 격려한 뒤 `파이팅'을 선창하고 경기장을 둘러봤다. 그리고는 이례적으로 약 15분 간 한국 취재진을 만나 인터뷰에 응했다.

2001년 33세의 나이에 삼성전자에 상무보로 입사해 경영수업을 시작한 이 전무가 지금까지 국내에서 언론과 인터뷰한 적은 없다. 해외 출장 중 기자들과 만나 대화를 나눈 적이 있지만 그것도 2007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CES 가전쇼 때가 사실상 마지막이었다.

이는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 선대 회장의 유훈(遺訓)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있다. 이병철 선대 회장은 다른 아들 둘을 제쳐놓고 후계자로 낙점한 3남 이건희 전 회장에게 말을 많이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라는 경청(傾聽)을 금언(金言)으로 줬다.

평소 과묵한 편인 이 전무도 부친의 영향을 받아 경청을 생활신조로 삼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이번 캐나다 출장 중에 이례적으로 기자들을 피하지 않은 채 스탠딩(서서하는) 인터뷰에 응했다.

이 전무는 기능올림픽에 대한 소감 외에 불황 속에서 삼성이 보여주고 있는 저력의 배경 및 자신의 신변에 관한 질문 7~8개를 받고 기자에게 한차례 역으로 질문을 던지는 여유를 보였다. 기능올림픽을 둘러본 소감을 기자가 묻자 "사람들이 정말로 열심히 하더라"고 답한 뒤 "직접 보니까 어땠나"라고 기자에게 되물은 것이다.

그는 기능올림픽과 관련한 질문에는 "기업 현장의 경쟁력은 바로 기능 인력에서 나온다. 다른 산업도 중요하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제조업이 가장 중요하고, 제조업이 탄탄하기 위해서는 기능 인력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취지로 말했다. 기능인력과 더불어 제조업의 중요성을 함께 강조한 것이다.

이 전무가 기능 인력과 제조업에 비중을 두는 발언을 한 것은 기능올림픽이 열리는 현장의 분위기를 반영한 측면이 있긴 하지만 삼성그룹을 제조업 중심으로 끌고 가겠다는 속내를 비쳤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그동안 언론 접촉이 드물어 사실상 베일에 가려져 있었던 이전무의 인생관을 엿볼 수 있는 단서가 눈에 띄기도 했다.

그는 `젊은 나이에 부담도 많고 일도 많을 텐데 사는 게 피곤하지 않느냐'라는 다소 엉뚱스러운 질문에 "내가 사는 게 피곤하다고 불평할 자격이 있나. 좋은 부모 좋은 선배 만나서 이 자리에 있다(혜택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선배들, 삼성의 경영자들은, 우리 말로 뭐라고 하나. Commitment(헌신)와 Loyalty(성실하거나 충성스럽다는 뜻)가 있고, Wise(현명하고 똑똑다는 뜻)하다. 이분들과 수십만의 삼성 임직원 분들이 잘해 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물론 부담스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라는 말로 심적으로 느끼는 중압감을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이 전무의 이번 인터뷰는 이례적인 점도 눈길이 가는 대목이지만 삼성그룹의 경영권 이양작업이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뤄져 주목받고 있다.

이 전무를 중심으로 삼성그룹이 굴러갈 수 있는 현 지배구조의 얼개를 놓은 1996년의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발행 사건과 관련해 기소됐던 이건희 전 회장은 지난 5월 대법원으로부터 이 부분에서 만큼은 무죄판결을 받았다.

에버랜드 CB 사건이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에버랜드의 지분을 이 전무에게 넘기는 과정에서 불거진 점을 고려하면 대법원 판결로 이 전무는 법적으론 삼성호(號)를 이끌어갈 적통자로서의 지위를 다진 셈이 됐다.

그러나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집단으로 성장한 삼성그룹은 국민 정서를 감안하지 않은 채 경영권 승계절차를 무리하게 밀어붙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재계관측통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 전무가 삼성 특검 결과가 발표된 지난해 4월 이후 최고고객책임자(CCO) 보직을 내놓고 국내외 사업장 등을 돌면서 `백의종군'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해석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전무는 공개 행사에 참석해 격려사를 하고, 한 발짝 더 나아가 언론과 접촉해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한 것이다.

일각에선 이 전무가 경영권 편법승계 문제를 둘러싼 법적 논란이 일단락된 후 처음으로 언론과 인터뷰를 한 것을 놓고 경영 전면에 나설 준비가 돼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삼성그룹 측은 "이번 기능올림픽이 의미있는 행사이고, 한국에서 출장을 간 기자들을 외면하기가 어려워 인터뷰가 이뤄졌을 뿐"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인터넷 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