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전인수 해석말라
주식투자 잘돼 수익 많을수록
판단 흐려지지 않았나 따져봐야
주식시장이 잇달아 연중 고점을 경신하면서 출구전략(exit strategy)에 대한 논의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쉽게 말해 그간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써 온 여러 가지 정책들을 거둬들여 원상태로 만든다는 뜻이다. 이처럼 출구전략의 핵심은 시장에 풀었던 돈을 회수하거나 금리를 올리는 것으로 증시엔 부정적인 재료가 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어떤 전문가들은 출구전략도 궁극적으로 주식시장에 호재일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당연히 투자자들에겐 혼란스러운 시점이다.
그림에서 가로 선을 집중해서 보자. 아마도 그 선들은 다소 휘어져 보일 것이다. 그러나 막상 자를 대고 보면 놀랍게도 이 선들이 모두 직선인 것을 깨닫게 된다. 일종의 착시현상인데 이처럼 사람들은 객관적인 사실을 잘못 보기도 하고, 잘못 느껴서 받아들이기도 한다. 이를 심리학 용어로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라 한다.
이런 착각은 위의 사례처럼 자연적인 현상에서 주로 발생하지만 주식 투자를 할 때도 종종 일어난다. 나에게 이익이 걸려 있는 일에선 나에게 항상 이로운 방향으로 착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 본인이 그런 오류를 저지른다는 사실을 스스로 느끼지 못할 때가 대부분이다.
주변에서 자기주장이 강하고 고집 세다는 말을 듣는 사람들은 인지부조화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다. 아무리 논리적인 설명을 해 줘도 자를 대고 증명하기 전까지는 분명히 그 선이 휘어져 있다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사람들은 어떤 사실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바꿔버린다. 물론 누구나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이런 오류는 언제든지 범할 수 있다.
얼마 전 필자는 커피숍에서 동료와 커피를 마시며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주로 요즘 젊은 세대들에 대한 비판적인 얘기를 했던 것 같다. 때마침 고등학교 남녀 학생 둘이 같은 색과 무늬의 티셔츠를 입고 창문 밖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옆의 동료에게 “아니, 요즘 애들은 고등학생들도 커플티를 입고 다니네. 참 세상에…” 하며 혀를 찼다. 그러나 이는 나의 성급한 비판이었음이 곧 드러났다. 내가 커플티로 착각했던 그 옷은 바로 학교 체육복이었던 것이다. 이어 지나가는 모든 학생들도 두 학생과 똑같은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만약 그 전에 우리가 커피를 마시며 젊은이들에 대한 비판만 하지 않았어도 그리 쉽게 학생들의 체육복을 커플티로 단정하진 않았을 것이다.
일상에서 이 정도의 착각은 그냥 웃어넘기고 말면 된다. 하지만 실제 투자에서 이런 착각을 하면 그야말로 치명적인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인지부조화의 오류가 심한 투자자가 주식을 많이 갖고 있다고 가정하자. 이 사람에게 악재란 있을 수가 없다. 만약 당국이 금리를 인상한다는 뉴스를 접했다면 “그만큼 경기가 좋아서 금리를 올렸다는 뜻이니 주가에는 긍정적이야”라고 받아들일 것이다. 또 금리를 인하했다는 발표에도 “금리도 내렸으니 이제부터 경기가 더 좋아지겠군”이라며 전혀 상반된 재료에 대해 모두 긍정적으로 판단할 것이다. 이 투자자는 환율이 상승하면 수출기업의 채산성이 좋아지니 주식시장의 호재로 판단하고, 환율 하락 소식을 접하면 우리나라 경제의 기초체력이 그만큼 강화됐다는 쪽으로 해석한다. 또 국제 유가가 상승하면 세계경제가 이젠 잘돌아 간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유가가 하락한다면 기업들 원가부담이 줄어든 것이니 역시 호재로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중국 증시가 폭락하면 중국에 투자했던 외국자금이 우리 주식시장으로 흘러들어 좋고 중국 증시가 폭등하면 중국 수출비중이 높은 우리 수출기업들이 수혜를 입으니 좋다. 이처럼 어떤 상반된 재료가 생겨도 이 투자자는 그의 염원인 주가 상승의 재료로 해석한다. 그러면 이 투자자에게 악재란 도대체 무엇일까?
남의 얘기가 아니다. 현재 투자가 잘돼 많은 수익을 내고 주식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면 이런 인지부조화에 걸려들지 말라는 보장은 없다. 요즘 증시가 많이 오른 만큼 내 판단이 흐려지고 있지는 않은지 한 번 점검해 볼 때다. 그래서 나중에 출구전략이 가시화되면 그때 어떤 투자판단을 할지 미리 생각해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송동근 대신증권 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