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법 시행 결과가 논란이 되고 있다. 비정규직법으로 인해 실업대란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비정규직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논리는 맞지 않다고 밝혀진 것이다. 그러나 개정된 비정규직법이 해고대란을 야기하지 않았다 하여 고용보호 수준이 높으면 고용 창출을 저해한다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일반적인 경험이 우리나라에서 무너졌다고 해석하면 옳지 않다.
고용보호 수준에 대한 외국의 경험을 살펴보면 유럽 국가와 미국은 정반대의 경험을 통해 상호 수렴하는 경향을 보인다.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고용 창출이 부진했던 유럽 국가는 그 원인을 높은 고용보호 수준으로 인식하고 고용보호 수준의 완화를 통해 고용 창출을 도모했다. 반대로 고용 창출의 성과가 좋았으나 사용자의 재량적인 해고를 원칙으로 했던 미국에서는 근로자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재량 해고의 예외조항을 대부분의 주가 광범위하게 수용했다.
정규직의 해고 제약 완화할 때
고용보호 수준의 변화가 실업과 고용에 미친 영향에 대한 외국 경험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먼저 고용보호가 실업에 미치는 영향은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고용보호의 강화는 청년층과 여성 등 상대적으로 취약계층 근로자의 취업 기회를 줄여 근로자 간 취업 기회의 왜곡을 발생시킨다. 한편 고용보호 수준의 강화는 일자리의 유입과 유출을 감소시키고 궁극적으로는 고용을 저해하는 경험을 보여준다. 미국의 경우 재량 해고 조항의 예외로 약 1%의 전체 고용 감소와 파견근로의 증가를 경험했다. 반면 스페인에서는 청년층과 노년층 정규직의 해고 조건을 완화해 청년층과 노년층에서 2%의 추가적인 고용을 창출했다는 분석이 있다.
국내 비정규직법의 시행이 대량 해고를 발생시킬 가능성은 애초부터 적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비정규직의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침은 물론 비정규직에서도 기간제 근로자보다는 파견이나 용역 등 법의 제한을 받지 않는 다른 형태의 비정규 근로자가 증가하리라 예상할 수 있다.
유의해야 할 점은 유럽의 경우 우리나라처럼 임시직 근로자가 아니라 대부분 일반 근로자를 대상으로 고용보호 수준을 변화시켰다는 점이다. 외국의 경험을 통해 볼 때 정규직 근로자의 고용보호 수준을 그대로 둔 채 비정규직만의 고용보호를 완화하면 고용 창출에는 도움을 주지 못하고 노동시장의 이중구조화를 심화시켜 소득분배 양극화를 촉진한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가 여기에 해당된다.
비정규직 사회안전망 강화를
우리나라는 정규직 근로자는 겹겹의 사회안전망에 의해 보호받지만 비정규직 근로자는 불과 40%만이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다. 그러나 정규직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비정규직은 사회안전망이 부실함에도 불구하고 해고가 자유로운, 모순 되는 상황에 놓여 있다. 고용 창출을 위해 고용보호 수준을 완화시키고자 한다면 정규직부터 시작해야 한다. 비정규직에 대해서는 사회안전망 사각지대의 해소를 위한 노력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또 정규직 전환을 위한 정부의 재정 지원보다는 비정규직 사회안전망 강화를 위해 그 재원을 사용하는 데 우선순위를 두는 방안이 노동시장 유연화의 초석을 다지는 길이다.
정규직의 전환 비율이 몇 %이니, 실업자가 몇만 명이니 하는 부질없는 수치 싸움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비정규직 근로자의 보호와 고용 창출을 동시에 달성하고자 한다면 정규직의 정당한 사유에 의한 해고 제약의 해소와 비정규직 사회안전망 사각지대의 해소를 먼저 시작하여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분을 없애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 이것이 비정규직 문제의 근본적 해결 방법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유경준 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