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상품가격이 급변하고 있다. 배럴당 70달러를 넘어서며 치솟던 원유가격이 주춤하고 반등하던 곡물가격도 급락했다. 아연 동 구리 등 비철금속 가격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반대로 국제 금 시세는 온스당 1000달러에 육박하면서 초강세를 나타냈다.
이는 경기 전망과 달러화 운명에 대한 엇갈린 시각에서 비롯된 일이다. 대개 상품가격은 수요-공급과 화폐(달러) 가치에 의해 결정되지만 1차적으로는 수요곡선에 따라 움직이는 경향이 크다. 특히 원유는 수요가 공급을 5% 초과하거나 5% 이상 적으면 100달러 저항선과 30달러 지지선을 뛰어넘는다. 최근 유가가 저항선을 못 넘고 꺾이는 이유는 결국 수요 증가에 대한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이다.
곡물도 메이저들의 매점매석으로 어지간한 풍작이 와도 가격 지지선이 무너지는 사례는 드물다. 하지만 작황이 부진하면 메이저들이 시장 지배력을 이용해서 강한 가격 드라이브를 건다. 그래서 곡물가격은 대개 상승 후 균형가격으로 돌아오는 회귀성이 강하다. 최근의 곡물가격 하락도 마찬가지 이유다. 비철금속이나 다른 원자재 가격들은 말할 것도 없다. 다만 천연가스는 계절 요인이 강하고 천연가스의 수급이 일시적으로 폭증하거나 폭락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가격 탄력성이 크다.
이에 비해 금은 수요-공급 곡선에 가장 영향을 적게 받는 자원이다. 이를테면 9월 인도 축제나 1월 중국 명절 영향으로 금 수요가 일시적으로 늘고 가격이 움직이는 경향은 있지만 이는 대개 장기가격에 녹아 있다. 드물게 국제통화기금(IMF)이나 러시아 중앙은행이 보유 금을 팔면 수급이 무너질 수 있지만 이때도 대개는 은행 간 거래이기 때문에 민간의 수급이 무너지지 않는 한 큰 의미는 없다.
즉 금 가격의 상승은 수급요인이나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가 아니라는 뜻이다. 만약 국제 금 가격이 1000달러를 넘어서고 이후에도 추세상승에 접어들면 그것은 곧 달러가치 하락과 인플레이션의 신호탄이라는 의미가 된다. 기본적으로 금은 인플레이션 대체재로서 화폐가치와 반대로 움직이는 것이 숙명이다.
향후 국제 금 시세가 움직인다면 달러화의 가치 나아가서는 화폐가치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지금 글로벌 자본시장이 갑자기 금 가격의 상승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이다. 특히 달러가치 하락에도 불구하고 경기상승에 대한 확신 부족으로 유가나 여타 원자재 가격이 지지부진하면서 금 가격이 상승하는 시나리오가 전개된다고 가정하자. 이는 아마 이 시점에서 세계경제가 가장 피하고 싶은 ‘인플레이션’이라는 손님이 ‘금리인상’이라는 초인종을 누르는 것이라고 판단해도 그리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래저래 집에 있는 돌 반지를 다시 챙겨 보게 되는 가을이다.
박경철 경제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