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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가 남긴 선물 ‘그린-바이오 비즈니스’ 미소짓다

입력 | 2009-09-08 02:56:00


[경제위기 1년 세계 중산층 리포트]새로운 금맥을 찾는 사람들 · 끝

《지난달 25일 영국 런던에서 만난 중국계 천이팅 씨(沈怡정·30)는 회사 이름과 직책 대신 ‘세계 시민(global citizen)’이라고 적힌 명함을 건넸다.

올해 초 다니던 회사를 박차고 나와 새 사업을 준비하며 만든 명함이다.

“사업을 시작한 뒤 엔도르핀이 넘친다”는 첫마디에는 새 일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천 씨는 정보기술(IT) 전문가들과 손잡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사업을 시작했다. 소셜네트워크는 한국의 싸이월드, 미국의 페이스북처럼 웹상에서 개인 간의 관계를 맺어주고 정보관리를 도와주는 인터넷 서비스.

그는 여기에 ‘자기계발’을 접목했다.

천 씨는 “경력관리, 다이어트 같은 자기계발에 관심이 많은 사람끼리 관계를 맺고 정보를 공유하도록 사이트를 기획했다”며

“경제가 어려울수록 이런 수요가 늘어난다는 점에 착안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마친 그는 작년까지 글로벌 컨설팅회사에서 중동, 아시아의 각국 정부를 대상으로 컨설팅을 하며 바쁘게 살았다.

하지만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언제 잘릴지 몰라 불안해하는 직장인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녹색시장 공략 - 보르게스(브라질·車세일즈)
친환경차 면세혜택 힘입어 1년간 10억원이상 벌었죠

‘황금알’ 바이오사업 - 탕커(중국·대학원생)
中정부 학비-생활비 지원… 신약개발 연구자 꿈 키워

절망에서 희망으로 - 마호니(두바이·부동산업)
작년 부동산 폭락에 큰 시련… 유럽시장 진출로 활로 찾아

천 씨는 경제위기로 위축돼 있지만 오히려 지금이 새로운 벤처를 창업하기에 가장 좋을 때라고 판단했다. 위기 덕분에 고급 IT 인력을 쉽게 스카우트하고 도심 사무실을 예년보다 30% 싸게 얻을 수 있었다. 천 씨의 사업은 현재 영국 창업경연대회에 출품돼 주목받고 있다. 그는 “위기가 닥쳤다고 움츠러들지 말고 새 꿈을 키울 기회를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며 “나는 그 기회를 잡은 행운아”라고 말했다.

글로벌 경제위기가 전 세계를 휩쓴 뒤에도 지구촌 곳곳에서는 희망의 싹이 자라고 있다. 취재팀이 만난 각국 중산층 중에는 그린 에너지, IT융합 서비스, 헬스케어 등 신(新)성장동력 산업에서 장밋빛 미래를 그리는 사람이 많았다. 새로운 금맥(金脈)을 찾는 사람들은 경제위기의 진원지인 선진국과 건설현장이 멈춰 선 두바이, 신흥대국인 중국, 브라질, 인도 등을 가리지 않고 전 세계 대륙에 고루 포진해 있다. 미래의 글로벌 경제지도가 어떻게 그려질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 커가는 녹색산업에서 푸른 꿈 키워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자동차판매 대리점 ‘아날리아 프랑코’를 운영하는 호드리고 보르게스 씨(29)는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최근 1년간 회사 순수익이 10억 원을 넘어섰다. 올해 초 정부가 자동차 판매 세금을 크게 낮춘 덕분이다. 특히 브라질 정부가 사탕수수에서 뽑아낸 에탄올과 가솔린 혼합연료를 쓰는 친환경 차량 ‘플렉스’에 대한 공업생산세를 전액 면제하면서 수익은 급증했다. 그는 “요즘 팔리는 신차의 80% 이상이 플렉스”라며 “세계 최대의 에탄올 생산 국가답게 정부가 대체에너지 보급에 주력하면서 혜택을 톡톡히 보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위기 이후 한국 정부가 미래 국가비전으로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을 추진하는 것처럼 세계 각국은 친환경에너지 산업을 앞다퉈 신성장동력으로 내세우고 있다.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은 이런 기류에 올라타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걸고 뛰고 있다.

유럽 통신회사의 엔지니어였던 류하이(劉海·31) 씨는 2007년 중국 상하이(上海)의 태양광패널 생산업체로 직장을 옮겼다. 그는 “3개 언어에 능통해 글로벌 기업에서 일할 수 있었지만 중국 녹색산업의 미래를 보고 이곳을 택했다”며 “내 선택이 옳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중국 정부가 최근 3조 위안(약 548조 원) 이상을 들여 신재생에너지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으면서 유럽 지역 세일즈를 담당하는 그의 실적도 좋아지고 있다. 류 씨는 “녹색성장이 세계적인 트렌드가 되면서 사업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며 “세제 혜택으로 태양광패널을 수출할 때 관세도 거의 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영국인 사이먼 리브스 씨(53)는 작년까지 최고경영자(CEO)로 있던 금융 소프트웨어 개발회사가 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팔린 뒤 대체에너지 컨설팅회사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1970, 80년대 글로벌 에너지기업에서 근무했던 그는 “경제위기로 CEO에서 물러나야 했지만 신재생에너지 산업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새로운 축복”이라며 “녹색성장에 관심을 쏟기 시작한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하면 사업은 문제없다”고 자신했다.

환경운동에서 삶의 가치를 찾는 사람도 있다. 영국인 제프 쿠트 씨(39)는 경제전문통신사인 블룸버그의 도쿄지사와 런던지사에서 일해 온 경제부 기자였다. 그는 2008년 3월 ‘사회적 기업’에 특화된 MBA 졸업논문을 쓰는 데 집중하려고 6개월간 휴직계를 냈다. 하지만 쿠트 씨가 논문을 마치고 돌아갈 시점에 블룸버그는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그도 돌아갈 자리를 잃었다. 잠시 좌절했지만 쿠트 씨는 정말 행복해질 수 있는 일을 하자고 결심했다. 환경운동가로 변신한 그는 현재 환경문제의 심각함을 고발한 영화 ‘멍청한 시대(Age of Stupidity)’의 홍보 및 마케팅을 맡고 있다. “경제위기 전에는 내가 끊임없이 소모되는 것 같았어요. 이제는 돈은 못 벌어도 제 내부에 에너지가 충만해지는 것을 느껴요.”

○ 의료사업가도 ‘희망찬가’

신성장동력의 또 다른 축으로 꼽히는 의료서비스와 바이오산업 분야에서도 경제위기는 남의 얘기일 뿐이다. 이곳에서도 남들보다 한발 앞서 황금 알을 거머쥐려는 사람들이 있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병원경영을 비롯해 의료 세미나, 의료교육 사업 등을 하는 압둘 살람 알 마다니 씨(50)는 “두바이 의료산업은 정부의 대대적인 육성으로 경제위기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며 “오히려 요즘 가장 바쁘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는 틈이 날 때면 올 초 공사를 시작한 두바이 최초의 소아전문 병원 건설현장을 찾는다. 지금껏 벌인 사업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그의 회사 ‘인덱스홀딩’이 입주한 ‘두바이 헬스케어시티’는 중동의 물류·금융·관광 허브로 입지를 굳힌 두바이가 의료 허브로 발돋움하기 위해 추진하는 야심 찬 프로젝트다. 세금이 없는 세계 최초의 의료특화단지로 올해 말 완공되는 하버드대병원 두바이센터를 비롯해 세계 각국의 병원과 약국, 클리닉이 들어선다. 두바이 정부는 고급호텔 등을 함께 조성해 의료관광 산업까지 육성할 방침이다. 마다니 씨는 “이에 발맞춰 앞으로 매년 헬스케어 투자를 10∼20% 늘릴 것”이라며 “5년 안에 대규모 종합병원도 지을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중국 화중과학기술대 예방의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탕커(唐科·23) 씨는 신약개발 연구자가 되는 게 꿈이다. 이런 꿈을 갖게 된 데는 중국 정부의 이공계 육성책이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정부는 과학기술, 특히 바이오기술(BT) 지원책을 다방면으로 쏟아내고 있다”며 “나도 이 정책의 수혜자로 대학원 학비를 전액 면제받고 생활비로 매달 1000위안을 받고 있다”고 소개했다.

중국 정부는 내년까지 628억 위안(약 12조 원)을 투자해 의약과 농업 등에 바이오산업을 접목할 계획이다. 탕 씨의 고향인 우한(武漢) 지역에도 바이오산업 단지가 들어선다. 그는 “중국은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조류 인플루엔자 같은 신종 질병이 많이 발생해 신약개발 산업이 더 각광받고 있다”며 “진로를 잘 선택한 내 미래도 밝다”고 말했다.

○ 글로벌 시장 발판으로 위기 탈출

위기로 잠시 절망에 빠졌다가 새로운 탈출구를 찾아 다시 도약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경제위기 이후 재편된 글로벌 시장을 도약의 발판으로 삼고 있다.

두바이 최대 부동산중개회사인 ‘베터홈스’를 운영하는 라이언 마호니 씨(35)는 “2009년은 사업을 시작한 이래 가장 힘들면서도 사업을 크게 번창시킬 수 있는 해”라고 말했다. 올 들어 아랍에미리트 내 지점 6곳을 없애고 직원 35%를 해고하는 등 힘든 시기를 겪어야 했지만 그동안 기회만 엿보던 해외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 경제위기로 세계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면서 해외 부동산을 구매하려는 고객이 늘어난 데다 유럽 지역의 부동산중개회사를 헐값에 인수하게 됐기 때문이다. 그는 “경제위기로 경쟁업체들이 쓰러지면서 확고한 1위로 올라섰다”며 “여기에 해외사업까지 시작해 위기가 기회가 된 셈”이라며 흐뭇해했다.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의 부동산개발회사에서 일하는 엔지니어 모하메드 라만 알 마키 씨(31)는 경제위기 이후 재편된 UAE의 개발시장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다. 위기 이후 두바이의 건설 현장이 멈춰선 것과 달리 아부다비는 최근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를 속속 쏟아내며 ‘뜨는 별’로 급부상했다. 두바이에 집중됐던 관심이 아부다비로 옮아가면서 올 상반기 6600여 개 기업이 신규 등록했을 정도. 이런 움직임 속에서 회사가 아부다비 프로젝트를 잇달아 따낸 덕에 마키 씨의 연봉은 16%나 올랐다. 그는 “신도시 개발과 대규모 인프라 사업을 시작한 아부다비의 미래는 밝다”며 “내게도 도전의 기회가 열렸다”고 말했다.

브라질 농산물 수출기업의 트레이더인 나탄 카타시 씨(56)는 위기 이후 새롭게 떠오른 수출시장을 발판으로 삼았다. 경제위기 이후 미국 등 선진국으로 수출하는 물량은 크게 줄어든 반면 중국과 인도 등 신흥시장 수출 물량은 늘고 있다. 이 기회를 포착한 카타시 씨는 내년 사업 목표를 최근 중국 자본이 대거 유입되는 아프리카 시장으로 잡았다. 그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성장잠재력이 매우 큰 만큼 이 지역에 집중하면 더 큰 기회를 잡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특별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