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추진하는 ‘물이 흐르는 남산 만들기 사업’이 내년 4월 마무리되면 메마른 산인 남산은 계곡물과 실개천이 곳곳에 흐르는 ‘촉촉한 산’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총 2.6km 길이로 조성될 실개천과 주변 연못에서 발을 담그고 물장구도 칠 수 있다. 조감도 제공 서울시
서울시, 두 줄기 2.6km 조성… 물길 생기면 생태계 복원 기대
지금의 서울 남산은 물이 흐르지 않는 메마른 산이다. 대규모 개발로 계곡으로 흘러야 할 물은 콘크리트 배수로를 따라 사라졌고, 그나마 남아 있던 실개천의 물마저 땅속으로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옛 남산은 계곡물이 넘치고, 곳곳에 실개천이 흐르던 촉촉한 산이었다.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인 정이오(鄭以吾)는 남산의 8가지 경치를 ‘남산팔영(南山八詠)’이라는 시로 표현했다. 정이오는 이 시에서 남산 계곡물에 갓끈을 빨아 말리는 선비들의 모습이 남산의 운치 중 하나라며 ‘연계탁영(沿溪濯纓)’이라 묘사하기도 했다. 서울시가 남산 르네상스 프로젝트의 하나로 내놓은 ‘물이 흐르는 남산 만들기 사업’이 내년 4월 마무리되면 이 같은 경치를 다시 즐길 수 있게 된다.
○ 남산에 실개천 흐른다
서울시는 사업비 188억 원을 투입해 남산 한옥마을∼북측 산책로 사이 1.1km 구간과 장충단공원∼북측 산책로 사이 1.5km 구간 등 총 2.6km 길이로 폭 1.5∼2m 규모의 실개천을 만드는 사업을 추진한다고 8일 밝혔다. 송경섭 서울시 물관리국장은 “기존 콘크리트 배수로를 자연형 계곡으로 정비해 계곡 물길을 복원한 뒤 새로운 물길을 만들어 빗물과 계곡물이 흐르게 하면 실개천을 조성할 수 있다”며 “중구 필동과 남산 한옥마을에 있는 홍수방지용 빗물저류조의 물을 이용해 하루 100t의 물을 남산 물길로 흘려보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가뭄이 들어 물이 부족하면 인근 지하철역에서 지하수를 끌어다 쓸 계획이다.
실개천은 유속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갖추게 된다. 유속이 빠른 곳은 계단형 실개천이 만들어지고, 느린 곳은 자갈이 깔려 있고 수풀이 우거진 실개천이 들어선다. 실개천 주변 평지에는 조그만 연못도 만들어진다.
○ 남산 생태계도 복원
물길이 들어서면 남산 생태계도 되살아날 것으로 보인다. 송 국장은 “1990년 ‘남산 제모습 가꾸기 사업’을 시작할 당시 남산에서 서식하는 것으로 조사된 생물종은 설치류(쥐류) 하나였다”며 “이제는 181종의 생물이 서식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했지만 물길이 복원되면 좀 더 다양한 생물이 서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조류와 곤충류의 먹이가 될 수 있는 세모고랭이, 꿀풀 등의 식물을 심을 계획이다.
남산 곳곳에 자리 잡은 역사·문화 시설도 함께 정비된다. 낙후된 장충단공원과 유관순 열사 동상 주변 공간에는 기념물이 연못물에 비치는 ‘반사연못’이 들어선다. 또 3·1운동 기념탑 주변은 미국 워싱턴 기념탑처럼 진입로에 연못과 분수 등을 조성하고, 외국인들도 3·1운동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 스크린과 음향시설을 설치하기로 했다. 경관이 수려하지만 접근이 불편해 무속인들만 찾곤 했던 범바위계곡 주변도 진입로를 정비하고 휴게시설을 만들기로 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