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와 2박 3일’ ‘여보, 고마워’ 등 드라마 같은 연극으로 돌풍 고혜정 작가
통속적 이야기 펼쳐 공감 백배
암으로 숨진 남편 등 체험 녹여
“제 작품 출연한 배우들에게 예술하려고 하지 말라 주문”
처음엔 방송작가였다. 2005년부터 에세이와 소설 등 책 4편을 썼다. 이들 책이 하나씩 그의 손을 거쳐 공연 대본으로 바뀌었고 모두 성공을 거뒀다. 2007년 고두심 주연의 ‘친정엄마’가 대박을 터뜨린 데 이어 올해 강부자 주연의 ‘친정엄마와 2박 3일’도 연극계 최고 히트작이 됐다. 지난해에는 여고동창생 다섯 명의 이야기를 담은 ‘줌데렐라: 아줌마가 꿈꾸는 14가지 판타지’가 뮤지컬로 제작됐고, 지난해 초연된 뒤 올해 다시 서울 중구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에서 공연 중인 ‘여보, 고마워’도 그가 원작자다. 공연계 ‘미다스의 손’이라 할 만한 고혜정 작가(41)를 만나 그의 작품 특징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 연극? 드라마? 프라마!
고 작가의 작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정통 연극 장르와는 한참 다른 이질성이 발견된다. ‘맞아, 맞아. 바로 내 얘기야’ 할 만한, TV드라마 같은 통속적 이야기를 압축적 대사로 펼쳐놓는다. 주인공은 암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 사랑했던 사람과 눈물겨운 이별극을 펼치며 정서적 치유를 경험한다. 관객은 TV드라마를 볼 때처럼 혼잣말을 중얼거리거나 흑흑 소리를 내어 운다.
배우들의 연기도 다르다. 관객을 향하지 않고 서로 마주본 채 대사를 주고받는다. 영상 속 인물과 대화를 나누거나 관객을 등지고 대화하기도 한다. 조명을 번갈아 켜며 두 가지 이야기를 병행하기도 한다.
이런 고 작가의 공연은 ‘드라마(drama)를 닮은 연극(play), 곧 프라마(prama)’라고 부를 만하다. 드라마가 본디는 ‘연극 희곡’이라는 의미였고, TV드라마 역시 연극에서 파생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어색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TV드라마의 등장 이후 ‘드라마=TV드라마’로 인식됐고 연극이 의식적으로 TV드라마와 차별성을 강화해온 점에서 ‘연극의 드라마화’는 분명 새로운 현상이다.
고 작가도 이 같은 의견에 공감했다. “맞아요. 저는 배우들에게 ‘제 작품 갖고 예술 하려고 하지 마세요’라고 말해요.” 작품에 연극배우보다 TV 탤런트를 기용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연극배우들이 제 작품을 읽으면 심심하다고 하는데, 탤런트들은 읽자마자 바로 눈물을 펑펑 흘려요.”
○ 프라마는 통속적이다? 치유적이다!
고 작가의 작품엔 개인사가 녹아 있다. 엄마가 암에 걸려 죽는 ‘친정엄마’나 딸이 암에 걸려 죽는 ‘친정엄마와 2박3일’의 여러 장면에 딸을 극진히 아끼는 작가의 친어머니 모습이 담겼다. 작가의 어머니는 2007년 ‘친정엄마’로 처음 연극이란 것을 보게 됐는데 “어쩌면 저렇게 너하고 내가 하는 얘기랑 똑같은 소리를 한다냐”라며 놀라워했다. ‘친정엄마와 2박 3일’이 딸이 죽는 이야기라는 말을 듣고는 “벼락 맞아 죽을 년, 어찌 그렇게 흉악한 것을 쓴다냐”며 관람을 거부했다.
사업 실패 이후 부인 대신 가사를 돌보는 남편이 위암에 걸리자 아내가 비로소 그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는 ‘여보, 고마워’에도 작가의 자전적 체험이 담겼다.
“2006년 소설을 발표할 때까지만 해도 건강하던 남편이 위암에 걸렸는데 지난해 이 작품을 연극으로 만들자고 연락이 왔어요. 남편의 설득으로 연극을 만들었는데 공연이 시작된 지 일주일 뒤에 남편이 숨을 거뒀죠.”
남다른 체험을 누구나 한 번씩 겪어봤을 이야기들로 엮어내고 눈물로써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재주는 어디서 생긴 것일까. 1남 1녀의 엄마로 씩씩하게 살아간다는 고 작가는 웃으며 말했다.
“제 작품을 보면서들 펑펑 우시는데 전 방송작가 할 때 코미디작가로 더 유명했어요. 재미있으라고 쓴 건데 왜 그렇게들 우시는지 모르겠어요.”
연극계의 불편한 시선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연극판에서 돈 벌어 방송으로 돌아갈 거란 말이 많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제 작품 공연장에선 나프탈렌 냄새가 나요. 외출복을 오랜만에 꺼내 입고 오신 분이 많은 거죠. 집에서 드라마만 보던 분들을 공연장으로 불러 모은 점도 인정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