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몬트리올-퀘벡시티 가보니
내년 2월. 캐나다 밴쿠버(브리티시컬럼비아 주)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린다. 1976년 몬트리올(하계), 1988년 캘거리(동계)에 이은 캐나다 세 번째 올림픽이다. 캐나다 역사를 거슬러 오르다 보면 여러 사실을 알게 된다. 애초 ‘뉴 프랑스’(1604∼1763)였던 것도 그중 하나다. 이름 그대로 신세계의 프랑스 식민지를 뜻한다. 그 뉴 프랑스의 유산은 건재하다. 프랑스어를 쓰고 유럽문화가 숨쉬는 퀘벡 주가 그 예다.
17세기 신세계 개척기. 북미는 영국과 프랑스의 각축장이었다. 유럽에서 사사건건 부딪치던 두 나라의 반목은 신대륙에서도 계속됐다. 땅 욕심은 끝이 없다. 영국은 대서양변 동쪽에서 서쪽으로 확장해갔다. 프랑스는 수로(세인트로렌스 강과 미시시피 강)를 따라 내륙을 점유했다. 두 맹주의 격돌은 예견됐다. 중간지대인 애팔래치아 산맥 서쪽에서 부딪쳤다.
이즈음 영국령북미(BNA·영국 식민지인 현재의 미국 땅)에서도 전운이 감돌았다. 13개주(미합중국의 모체)가 연합해 영국에 대항한 독립전쟁이다. 프랑스로서는 신세계에서 영국을 몰아낼 절호의 기회였다. 그래서 거든 그 전쟁. 영국이 좌시할 리 없다. 뉴 프랑스와 전쟁은 시작됐고 퀘벡 요새에 이어 몬트리올까지 함락시킨다. 그 결과 파리조약에서 프랑스는 뉴 프랑스를 잃는다. 영국 차지가 된 것이다. 1763년 일이다.
그런데 이게 화근이었다. 새 영토는 늙은 제국 영국에게 큰 부담이었다. 이어진 20년간의 독립전쟁. 영국은 결국 식민지군에게 손을 든다. 독립국가 미합중국의 태동이다. 동시에 영국령북미는 미국을 제외한 세인트로렌스 강 이북, 현재의 캐나다로 줄어든다.
세기말과 세기초, 언제나 밀레니엄(19세기)은 변화시점이다. 19세기가 태동하면서 영국령북미의 세 식민지(캐나다주 노바스코샤 뉴브런즈윅)도 국가 결성에 나선다. 하지만 전쟁은 없었다. 영국식 합의로 문제가 해결됐다. 영국 하원의 동의 하에 캐나다 자치령으로 다시 태어났다. 입헌군주국 캐나다의 모체다. 영국 여왕은 형식상이기는 해도 여태 캐나다연방의 수장이다.
뉴 프랑스가 사라진 지 246년. 그래도 북미대륙에는 여전히 뉴 프랑스의 문화와 유산이 존재한다. 케이준(cajun) 음식과 퀘벡 주가 그것이다. 케이준은 양파와 샐러드, 쌀을 많이 쓰는 북미의 독특한 음식이자 소스. 이 인기 만점의 케이준이 ‘아카디안(Acadian)’이란 단어가 와전돼 태어난 18세기 신세계의 산물이란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아카디안은 아카디아 주민을 뜻한다. 1604년 최초로 신대륙에 정착한 프랑스인으로 현재의 노바스코시아와 뉴브런즈윅 두 주에 살았다. 이들은 18세기 신대륙에서 벌어진 영-프랑스전쟁에서 프랑스가 패하는 바람에 개간한 땅을 영국에 빼앗긴 채 북미 곳곳으로 추방당했다. 그 역사를 담은 것이 케이준 음식이다. 케이준은 신세계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문화에서 이종교배로 잉태된 전혀 새로운 문화인 만큼 ‘영국+프랑스’식 짬뽕이다.
○ 파리 밖에서 가장 파리를 닮은 도시 몬트리올
케이준에 깃든 뉴 프랑스의 유산과 문화. 그것을 나는 지난여름 캐나다 여행 중에 찾아보았다. 몬트리올 중앙역의 대합실. 벽에 국가 ‘오 캐나다’의 가사가 적혀 있다. 그런데 좌우가 달랐다. 한 쪽은 영어, 다른 쪽은 프랑스어다. 뉴 프랑스의 모체인 퀘벡 주, 그것도 몬트리올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장면이었다.
몬트리올은 파리 밖에서 가장 파리를 닮은 도시다. 지하철을 보자. 파리 것과 같은 이름(메트로)이다. 바퀴가 고무제품인 것도 같다. 공공 자전거 대여시스템인 ‘빅시’(Bixi·무인주차대에서 신용카드로 손쉽게 빌리고 반환하는 자전거) 역시 같다. 파리에서 들여온 것이다.
이 도시는 프랑스어가 첫 번째 언어다. 퀘벡 주 전체가 그렇지만. 교통표지판도, 주소도, 거리이름도 모두 프랑스어다. 상점에서 계산할 때도, TV 방송도 프랑스어다. 물론 영어도 잘 통한다. 와인을 좋아하는 것도 같다. 캐나다 와인의 50%가 여기서 소비될 정도다.
중세의 성곽서 공짜로 즐기는 ‘태양의 서커스’
파리를 연모하고 프랑스문화를 도시 DNA로 간직한 몬트리올. 디자인 감각을 살려 좀 더 세밀히 들여다본다면 더더욱 값지게 다가올 것이다. 건축이 그 예다. 거리에 즐비한 18, 19세기의 옛 건물들. 이번엔 그 옆에 선 현대 건축물을 보자. 바로 옆 옛 건물에서 따온 패턴 혹은 이미지를 차용해 디자인했다. 또 가로등과 신호등이 거리마다 디자인이 달랐다. 유네스코가 선정하는 디자인 시티에 들어가고도 남을 만하다.
몬트리올 시민의 프라이드는 하늘을 찌른다. ‘북미의 섬’이라는 퀘벡 주의 독자성, 즉 프랑스어를 쓰고 유럽식 사고방식과 문화를 유지하는 데서 온다. 며칠 있다 보니 그 역시 밉지 않은 자부심으로 이해됐다. 보통의 북미(캐나다 미국)도시에서는 흔한 광경이지만 여기서는 볼 수 없는 게 몇 있다. 커피를 든 채 거리를 활보한다거나 길가에서 음식을 먹는 일 등이다. 몬트리올에서는 낯선 일이란다. 박물관이 많은 것도 그 하나다. 35개 박물관(식물원 포함)을 3일간 무료 입장할 수 있는 박물관 패스도 있다.
● 북미 유일의 성곽도시 퀘벡시티
영국과 프랑스는 섬과 대륙을 대표한 국가다. 그런 만큼 신세계 접근방식도 반대였다. 영국이 대륙해안을 선호한 것과 달리 프랑스는 수운을 통해 내륙부터 점했다. 그 때가 1534년. 자크 카르티에는 세인트로렌스 강을 통해 북미대륙을 최초로 탐험한 프랑스인이다. 그는 이 땅을 ‘누벨 프랑스’(뉴프랑스)라고 명명하고 프랑수아1세 왕에게 헌정했다.
정착과 교역을 위한 세인트로렌스 강 탐사는 1603년 사뮈엘 드 샹플랭에 의해 시작됐다. 그리고 5년 후 첫 정착촌이 형성됐다. 현재 북미 유일의 성곽도시인 퀘벡시티다. 이곳은 현재 퀘벡 주 주도로 지난해 정도 400주년을 맞았다.
세인트로렌스 강은 미시시피 강과 더불어 북미대륙의 내륙을 관통해 대서양 건너 유럽을 뱃길로 이어주는 젖줄이다. 그중 오대호가 발원지인 세인트로렌스 강은 800km를 흘러 대서양에 유입된다. 퀘벡시티는 바로 그 강의 관문. 하구를 형성하며 폭이 넓어지는 강의 길목에 있다. 그래서 뉴프랑스의 요새가 여기에 섰다.
퀘벡시티와 강화도는 닮았다. 강을 낀 요새라는 점과 함락 당해 치욕을 당한 점이다. 염하를 낀 강화도도 한강 초입에 있고 17세기 병자호란 당시 강화성 함락으로 인조가 몽고에 항복하는 국난의 중심에 있었다. 세인트로렌스 강의 퀘벡시티도 같다. 영불전쟁 중 영국군의 기습을 막지 못해 함락됐다. 그리고 그 자체가 뉴프랑스의 종식이었다.
하지만 퀘벡시티의 요새는 건재하다. 요새 아래 강변의 성곽도 마찬가지다. 성곽 안에는 ‘올드 퀘벡’이라는 중세모습 17세기 도시가 있다. 인디언과 모피교역을 위해 집결했던 곳으로 당시 북미 최고의 상업 중심지다. 올드 퀘벡은 전체가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그만큼 옛 모습이 잘 보존돼 있다.
세인트로렌스 강을 거슬러 오르면 토론토가 있는 온타리오 호수에 닿는다. 그리고 한동안은 미국과 국경을 이룬다. 캐나다 주요 도시는 모두 남쪽에 있고 대부분은 이 강을 끼고 있다. 한때 북미 최고 무역항이었던 몬트리올, 옛 수도인 킹스턴이 그렇다. 1000여개 섬이 점점이 떠있는 멋진 관광지 사우전드 아일랜드 역시 킹스턴(온타리오 주) 근처(미국 뉴욕 주)의 이 강에 있다.
나는 그 퀘벡시티를 겨울과 여름에 두루 여행했다. 이 도시는 계절의 특색이 분명했다. 추운 겨울은 눈과 얼음을 주제로 한 윈터 카니발로, 햇볕 쨍쨍한 여름은 수백 개의 콘서트로 점철되는 서머 페스티벌로 상징된다. 7월 중순 내가 찾았을 때는 서머 페스티벌(7월 9∼19일)이 시작된 날이었다. 첫날 저녁. 야외에서 ‘기타의 신’ 제프 벡의 공연이 열렸다. 기괴한 분장의 록그룹 키스, 위대한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 등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출연할 예정이었다. 해지고 땅거미가 찾아들자 성 안 올드 퀘벡 거리와 성 밖 공원의 공연장(세 곳), 그리고 곳곳의 홀에서는 장르와 국경을 초월한 온 세상 음악이 연주됐다. 볼 만한 퍼포먼스도 흘러넘쳤다. 이 축제는 올해로 42년째다.
태양의 서커스도 야외공연을 펼쳤다. 그곳은 도심의 고가도로 밑 공터. 밤이 되자 환상적인 서커스 공연이 한 시간 반 이상 계속됐다. 놀라지 말라. 입장료가 ‘무료’다. 물론 선 채로 보지만 다리 아픈 줄도 모를 만큼 환상적이다. 수만 원씩 하는 이 세기적 쇼를 관광객에게 무료로 보여주는 곳. 지구상에 퀘벡시티뿐이다. 2014년(매주 5일간)까지 계속되니 꼭 한 번 찾을 일이다.
올드 퀘벡에 있으면 유럽에 온 듯한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거리의 악사, 중세 건물, 프랑스어와 프렌치 레스토랑…. 그래서 퀘벡시티로의 여행은 더더욱 매력적이다. 북미 대륙에서 만나는 진짜 유럽. 색다른 체험이자 즐거움이니 ‘죽기 전 꼭…’ 리스트에 올리시도록.
동계올림픽 ‘단골 개최국’… 내년엔 서부 밴쿠버서
캐나다 사람에게는 아쉬움이 하나 있다. 두 번이나 개최한 올림픽에서 한 번도 ‘오 캐나다’(국가)를 듣지 못해서다. 노 금메달임을 뜻한다. 내년 밴쿠버에서만은 기필코…. 나 역시 기대한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은 악몽이었다. 적자 때문이다. 개막 6년 전. 올림픽을 유치한 장 드라포 시장은 이렇게 자신했다. “남자가 임신을 할 수 없는 것만큼이나 몬트리올 올림픽의 적자 가능성은 없다.” 그 말이 씨가 됐을까. 재정악화는 현실로 드러났다. 메인스타디움 공기를 지키지 못할 정도였다. 급기야 퀘벡 주가 떠맡았다. 개막 1년 전이다. 스타디움은 개막 직전 겨우 완공됐다. 주정부에 진 빚은 161만 캐나다달러. 몬트리올 시는 3년 전에야 청산했다. 30년 만이었다.
올림픽 콤플렉스인 올림픽파크는 몬트리올의 대표적 관광지다. 백미는 메인스타디움의 몬트리올타워. 두 강에 둘러싸인 크루아상(초생달 모양의 프랑스 빵) 모습의 섬 몬트리올이 한눈에 내려다뵈는 전망대다. 올림픽 후 스타디움은 화학섬유 지붕에 덮인 돔으로 바뀌었다. 타워는 그 지붕을 위에서 붙드는 로프의 지주다. 옆 벨로드롬은 생태 체험관 ‘바이오 돔’으로 이용된다.
몬트리올 올림픽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레슬링(자유형)의 양정모가 첫 올림픽 금메달을 대한민국에 선사한 것이 이때다. 열네 살의 ‘체조요정’ 나디아 코마네치가 전대미문의 10점 만점을 일곱 차례나 기록한 것도, 미국의 프로복서로 세계챔피언을 지낸 슈거레이 레너드와 리언 스핑크스, 마이클 스핑크스가 모두 이 대회 금메달리스트였던 것도 그렇다. 체조경기장의 전광판이 네 자리로 바뀌고 프로선수가 올림픽에 출전한 것도 모두 몬트리올 이후다. 당시 코마네치가 기록한 10점은 1.00으로 표시됐다. 몬트리올은 아마추어 정신으로 치른 마지막 올림픽이었다.
내륙의 몬트리올과 달리 밴쿠버는 캐나다 서부 태평양변 도시다. 서안해양성기후로 한겨울에도 비가 내릴 만큼 여타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따뜻하다. 하지만 개막식이 열릴 휘슬러 산악은 스키천국으로 이름난 눈 세상이다. 그 눈은 이 산을 품은 캐스케이드 산맥의 작품. 태평양의 다습한 공기가 이 산에 부닥쳐 상승하면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밴쿠버 올림픽의 심벌인 이눅슈크를 아시는지. 이누이트족 등 북반구 툰드라지역(캐나다∼그린란드) 원주민이 내비게이션 등의 용도로 써온 위대한 유산이다. 두 개의 돌기둥 위에 포개어 쌓은 서너 개의 넓적한 돌을 떠받친 탑 형태로 양팔 벌린 사람 모습인데 크기는 천차만별. 사냥터 표시 혹은 사냥감의 보관처로도 이용됐다.
이 이눅슈크가 올림픽을 맞아 밴쿠버에 등장했다. 잉글리시 베이와 휘슬러 산 정상인데 올림픽 기념촬영 장소가 돼가고 있다. 겨울은 이 나라의 랜드마크다. 그 대표적 풍경은 야외 아이스링크. 올림픽을 맞아 밴쿠버 중심가 롭슨 스퀘어에도 재개장(GE 아이스플라자)된다. 올림픽 기간 중 최고의 핫스폿(방문객과 언론의 초점이 모아지는 곳)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휘슬러 산에는 이외에도 많은 올림픽 시설이 있다. 최근 영화 ‘국가대표’로 우리에게도 관심이 높아진 스키점프 시설도 있다. 그곳은 휘슬러 올림픽파크로 유럽인이 열광하는 바이애슬론경기장도 함께 있다. 봅슬레이, 썰매인 루지경기가 열릴 휘슬러 슬라이딩센터도 함께 들어선다. 이곳은 올림픽 전후로 예약제 투어프로그램으로 돌아볼 수 있다. 생중계될 올림픽 경기장면을 대형화면으로 볼 장소도 마련됐다. 시내 데이비드 램 공원과 라윌 공원인데 밤마다 레이저쇼와 함께 워터쇼도 펼쳐진다. 네 원주민 부족의 유산과 문화를 보여줄 특별전시장(Four Host First Nations Pavilion)도 마련된다.
퀘벡=조성하 여행전문 기자 summer@donga.com
디자인=공성태 기자 coonu@donga.com
●여행정보
◇몬트리올=애초 모피교역항으로 개발된 몬트리올은 크루아상 모양의 섬이다. 그 섬은 400년 역사의 올드포트, 그리고 모던한 다운타운으로 구분된다. 몬트리올에는 도시가 두 개다. 지상과 지하로. 지하도시는 거대하다. 조금 과장하면 겨우내 지상에 나가지 않고도 살 수 있을 정도다. 지하철과 지하상가가 건물과 긴밀하게 연결됐다. 관광지로는 몬트리올타워와 바이오돔(실내 생태관)이 있는 몬트리올 올림픽파크, 그 옆의 버태니컬가든(식물원), 세인트로렌스 강 유람선투어, 노트르담 성당, 마운트로열 성요셉 오라토리 등이 있다. 매년 7월 1일(캐나다데이)에는 방문을 삼가자. 27만 명이 동시에 이사하는 ‘손 없는 날’이기 때문. ▽관광정보 △주 관광청:www.bonjourquebec.com △시 관광청: www.tourism-montreal.org △올림픽파크:www.parcolympique.ca △몬트리올타워:www.rio.qouv.qc.ca △바이오돔:www.museumnature.ca △버태니컬가든:www.museumsnature.ca △몬트리올 고고학역사박물관:www.pacmuseum.qc.ca △레스토랑 ‘르 자르댕 넬슨’:www.jardinnelson.com 예약을 받지 않는 선착순 식당으로 올드포트 광장에 위치. △몬트리올 재즈페스티벌:매년 7월 초 시내에서 개최하는 무료 콘서트(350개). www.montrealjazzfest.com △3일간 뮤지엄 패스:www.museesmontreal.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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