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산부인과가 병원인지 대형 할인마트인지 모르겠어요.”
수화기를 통해 들려온 한 산부인과 개원의의 목소리에는 답답함이 배어 있었다. “사람 목숨을 다루는 곳인데 아무리 가격을 낮추려고 해도 안 되는 부분이 있거든요. 싸고 부대시설이 많은 몇몇 대형 병원에만 산모들이 몰리면서 작은 산부인과들이 설 곳이 없어요.”
아기 한 명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산모의 힘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진통이 시작되면 산모는 12∼24시간을 누워서 대기해야 한다. 2교대로 간호사가 상태를 살펴야 하고, 아기를 낳을 때는 의사를 빼고 최소 4명의 간호사가 산모 한 명에게 달라붙어 있어야 한다. 여기까지는 순조롭게 자연분만을 하는 경우에 해당하는 얘기다. 산모가 제왕절개 수술이라도 받게 되면 필요한 사람과 장비는 확 늘어난다. 아기를 낳은 뒤 필요한 신생아실, 신생아를 돌볼 전담 간호사, 산모를 위해 미역국을 끓여줄 식당 인력도 필요하다.
이렇게 2박 3일간 입원한 뒤 내는 비용은 10만 원이 채 안 된다. 그러다 보니 산부인과 병원들은 1인실이나 분만가족실, 비싼 영양제 같은 ‘옵션’을 권한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가 10일 공개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험수가 비교분석표’에 따르면 한국의 자연분만 수가는 다른 OECD 국가의 5분의 1 수준이다. 일본과 비교해도 4분의 1수준에 불과하다.
한 산부인과 개원의는 “건강보험공단에서 받는 돈을 다 합한다 해도 한 달에 20명 이상의 아기를 받아야 병원이 손해를 보지 않는다”며 “요즘 한 달에 10명도 못 받는 소규모 산부인과는 도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가임 여성당 평균 1.19명을 낳는 국내 현실을 볼 때 아기를 많이 받아 손해를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실제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집계한 통계를 보면 분만이 가능한 산부인과는 2001년 1570곳에서 2007년 1009곳으로 줄어들었다. 매년 평균 75곳의 산부인과가 문을 닫고 있다.
분만을 접는 산부인과가 늘어날수록 피해는 산모에게 돌아오게 된다. 현재 59개 군(郡) 지역에는 분만시설이 전혀 없다. 진통이 갑자기 시작되거나, 양수가 예정일보다 일찍 터졌을 때 산모를 안고 이리저리 헤맬 날이 그리 머지않을 수도 있다.
경영이 어려운 산부인과들은 신생아실 자리에 미용기계를 들여놓고 있다. 또 다른 의사의 말은 씁쓸한 기분을 남겼다. “아기를 받아야 할 손으로 미용 레이저를 쏘면서 ‘이것도 크게 보면 다 여성을 위한 치료지’라고 스스로 위로해요.”
노지현 교육복지부 isit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