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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독학(독서하는 학생)’이 성공한다” 책 권하는 캠퍼스

입력 | 2009-09-11 02:52:00


《“답안지를 채점하거나 수업을 하면 늘 똑같은 답만 내는 학생들이 많아요. 자기 나름대로 생각하는 능력이 부족한 것인데, 책을 읽지 않기 때문이지요.”(정민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인터넷이 발달하다 보니 학생들이 도서관에는 잘 오질 않아요. 그래서 독후감대회 등 이벤트로 독서에 흥미를 유발하려고 합니다.”(이희정 고려대 세종캠퍼스 학술정보관 사서)》

‘독서 골든벨’… ‘오거서 운동’… 장학금 지급 등 각종 장려책
“독서 세미나 학점 인정 등 지속적인 프로그램 필요”

독서골든벨(한양대), 오거서(五車書) 운동(성균관대), 고전읽기 강좌(서울대), 독서특성화대학 선언(숭실대)…. 대학생들의 인문학과 사회과학 관련 독서를 확산시키기 위해 대학가가 비상이다. 판타지 소설이나 무협지, 실용서, 취직 관련 서적들을 많이 읽다 보니 학생들의 사고력이 떨어지고, 대학도 취업보조기관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한양대는 11월 ‘2009 한양인 독서대축제’의 하나로 ‘독서골든벨’을 연다. ‘변신 이야기’ ‘침묵의 봄’ 등 권장도서 70권 중 10권을 선정해 그 안에서 퀴즈를 내고 1위에게 미국 아이비리그 견학 기회를 준다. 독서골든벨에는 155개 팀 465명이 신청했다.

이 덕분에 한양대 도서관 대출순위에서 권장 도서가 10위권에 오르는 변화가 일어났다. 1학기 때는 해리포터 등 베스트셀러 소설이나 ‘일반물리학실험’ 같은 전공서가 1, 2위를 다퉜으나 여름방학 이후 골든벨 출제 대상인 인문사회과학 서적이 10위권을 차지했다. 참가신청을 낸 한양대 신소재공학과 조경완 씨(20)는 “책들이 대부분 낯선 주제인 데다 대회를 위해 꼼꼼히 읽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린다”면서도 “꾸준히 책을 읽다 보니 습관이 들어서 대회 뒤에도 계속 책을 찾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정민 교수는 “문제가 출제되는 10권이라도 꼼꼼히 읽는다면 독서에 흥미를 갖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학생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어서 내년에도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성균관대 숭실대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에서도 책을 읽히기 위한 운동이나 강좌를 개설하고 있다. 성균관대는 학부모, 부장판사 등에게 추천도서 목록을 받아 학생들에게 주는 ‘오거서 운동’을 펼치고 있다. 숭실대는 ‘독서특성화대학’으로 설정하고 이번 학기부터 ‘독서비전스쿨’ ‘창의적 실용독서 및 토론’ 등의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고려대 세종캠퍼스는 21∼30일 ‘라이브러리 페스티벌’을 열어 10여 년 만에 독후감대회를 부활시킨다. 서울대는 이번 학기에 독서 관련 강의 9개를 새로 개설했다. 주제별로 독서하는 ‘주제로 읽는 고전’, 막스 베버, 미셸 푸코 등의 저서를 읽는 ‘세계의 지성’, 최근의 사회과학서적을 소개하는 ‘현대 사회과학 명저의 재발견’ 등이 있다. 연세대는 이과대, 간호대를 대상으로 한 ‘명저 읽기’, 교양강의인 ‘독서와 토론’을 운영 중이다.

서울대의 ‘주제로 읽는 고전’ 수업 중 ‘대학과 사회’ 수업에 참여하고 있는 서양사학과 4학년 오세권 씨(24)는 “그냥 책을 읽는 것보다는 이렇게 대학과 지식인의 역할 같은 특정 주제를 잡아 책을 읽는 것이 더 흥미롭다”며 “학생들이 직접 책을 읽고 토론하는 방식이라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학들의 이 같은 움직임이 1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전개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명저 읽기’ 강의를 하고 있는 김상수 연세대 학부대학 교수는 “대학들이 독서가 필요하다는 점에는 공감하고 있지만 대부분 단기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때문에 지속적인 독서 습관을 형성하기는 어렵다”며 “정규수업에 편성하고 토론하도록 하는 등 좀 더 깊이 있는 독서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예일대의 경우 학생들이 지속적으로 독서 세미나에 참여하도록 하는 ‘디렉티드 스터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존 로크나 마키아벨리 등 고전을 중심으로 3년간 일주일에 한 번은 강의를 하고 두 번은 학생들끼리 세미나를 하도록 한다. 이 세미나를 끝마치면 6개의 교양필수과목을 수강한 것으로 인정된다.

김세균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장은 “학생들이 독서를 하더라도 전공에 관련된 책만 읽는 경향이 있다”며 “다른 학과, 다른 분야의 책을 읽는 등 폭넓게 독서할 때 학문에 대한 시야도 넓어지고 통합적 사고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