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후된 5곳에 선수촌 건설
고용 창출 - 주택 공급 기대
빈곤 청소년 참여 문화행사 늘려
이민자 등 소외층 끌어안기 시도
《“2012년 제30회 하계 올림픽 개최지는 런던입니다.”
2005년 7월 5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117차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는 영국 유치단의 환호성과 함께 런던을 역사상 최초의‘세 번째 올림픽 개최 도시’로 띄워 올렸다.
이로써 런던은 1908년, 1948년에 이어 64년 만에 세계 최대의 스포츠 제전을 치르게 됐다. 국내의 만만치 않은 반대 여론, 특히 지방 도시들의 질시 어린 눈길에도 불구하고 런던이 대역사를 밀어붙인 데는 남다른 이유가 있었다. 날로 심화되는 런던 시내 ‘인종 분리’와 이로 인한 사회 갈등을 구조적으로 극복하는 데 올림픽을 활용하겠다는 계산이었다. 주최지 결정 이후 4년, 올림픽 개최까지 3년 남짓. 사회 통합의 효율적인 무기로 영국은 런던 올림픽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현장에서 알아보았다.》
바리알레 시기왈 군(18)은 포연 속의 조국 아프가니스탄을 떠나 2001년 부모를 따라 영국에 왔다. 이국 생활이 제법 몸에 붙었지만 어떤 분야에서 장래를 열어갈지 자신이 서지 않았다. 함께 온 친지와 친구들은 대부분 단순 노무나 음식점 주방 보조 등 단순한 직종에서 일했지만 그의 꿈은 거기에 머무르지 않았다. 어느 날 그는 망명자나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게 교육과 취업 기회를 열어주기 위해 영국 정부가 마련한 ‘퍼스널 베스트(Personal Best)’ 프로그램을 알게 됐고, 인터뷰에 응했다.
올림픽에서 그는 자원봉사자로 아프간 팀을 위한 통역 일을 맡을 예정이다. 퍼스널 베스트 프로그램에서 통역 전문가 초급과정을 통과했고 올림픽 전까지 중급, 고급 과정을 차례로 통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도 있다. “운동을 좋아하고,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저에게 이 일은 ‘딱’입니다. 더군다나 지금의 조국과 예전의 조국 모두를 위해 일할 수 있으니 영광이죠.”
○ 최고 낙후지역이 ‘개발의 중심’
시기왈 군의 사례는 올림픽을 통해 영국이 노리는 사회적 부가가치가 무엇인지 잘 나타낸다. 영국 정부의 문화 및 스포츠 정책을 총괄하는 문화미디어스포츠부(Department for Culture, Media and Sports·DCMS)는 올림픽 유치 신청 당시 ‘런던 올림픽의 5대 비전’을 공표했으며 이를 올림픽의 제1 목표로 유지 발전시키고 있다. 5대 비전은 △스포츠 강국 수립 △동부 런던 재개발 △청년·청소년층에 영감 △지속 가능한 생활의 청사진 제시 △‘생활과 비즈니스에 편하며 창조적이고 포용력 있는 영국’의 홍보로 요약된다.
이 같은 비전은 오늘날 런던이 안고 있는 강점뿐 아니라 문제점도 요약해 보여준다. 19세기에 비롯된 런던의 지역 격차는 2차대전 이후 급속히 심화돼 왔다. 올림픽 메인 스타디움이 위치한 뉴햄을 중심으로 ‘올림픽 개최 구(區·Borough)’ 5곳은 영국 내에서 인도·파키스탄계로 대표되는 서남아시아 인종의 집결지로 꼽힌다. 런던 내 실업률 1∼3위 지역 모두가 이곳에 있으며 소득 최하위 지역도 올림픽 스타디움이 있는 뉴햄이다.
2012년 런던 올림픽은 ‘희망이 없는 지역’으로 전락해가던 이곳 런던 동북부의 면모를 일신할 기회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올림픽 공원과 선수촌인 올림픽 빌리지를 중심으로 30만 m²의 광대한 터가 완전히 새로 탈바꿈하며 5500가구의 주택과 상업지구 ‘월드클래스 비즈니스센터’가 들어선다. 올림픽 이후에도 최소 1만∼1만2000가구를 더 지을 계획이다. 대형 건설 프로젝트가 많은 한국의 기준으로는 인상 깊지 않은 수이지만 5개 구의 인구가 112만 명임을 감안하면 지역 인구 7∼10%가 새로운 집을 갖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 정부는 월드클래스 비즈니스센터에만 1만2000명의 고용 기회가 생길 것으로 추산한다. 런던 전체에서는 7만 명의 신규 고용을 창출하며, 이 중 2만 명이 올림픽 주최 5개 구에서 새로 취업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같은 기회가 자칫 건설회사들의 잔치만으로 끝나지 않도록 하는 노력도 분명하다. DCMS가 올해 펴낸 연차보고서는 “올림픽의 장기적 이득에는 영국에서 사회적으로 가장 다양한 지역인 동부 런던의 지역 커뮤니티를 강화하는 것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이에 따라 런던 개발청(London development agency)과 5개 구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기구 ‘사후영향 계획회의(legacy masterplan framework)’가 수립됐다.
○ 청소년 참여 문화행사로 격차 줄이기
‘청년·청소년층에 영감 제공’을 명시한 DCMS의 비전은 다양한 프로그램에 청소년들이 참여해 지역이나 인종, 계층에 따른 소외감을 줄임으로써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부모가 카리브 해 연안국에서 온 이민자인 카이잔카 모지스 양(16)은 대영도서관이 올림픽 기간까지 이어갈 기획 전시 ‘당신 자신의 언어로(In your own words)’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는 이 도서관에서 발견한 1891년의 ‘부스 빈곤 지도’에 대한 관람 설명을 작성했다. “이 지도를 보면 런던이 19세기에도 지역별로 극단적인 격차를 보였단 점을 알 수 있어요. 올림픽이 격차를 줄이는 계기가 될 거라는 기대도 합니다.”
대영도서관의 이 전시는 영국 각지의 미술관과 박물관, 도서관이 참여하는 ‘세계의 이야기들’ 프로젝트의 일부다. 이름이 나타내듯 기관별로 여러 인종의 젊은 영국인들을 ‘임시 큐레이터’로 참여시킨다.
청소년들이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해 지역 채널로 방영하도록 하는 ‘미디어 트러스트’도 올림픽 문화 프로그램의 일부다. 예술가 지망 청소년 4만 명의 활동을 지원하는 ‘자취를 만드세요(Make your mark)’ 프로그램, 동북부 런던 지역 청소년들이 축제 기획, 이벤트, 음악 공연 등 기술을 익힐 수 있도록 지원한 뒤 올림픽 행사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문화 자원봉사’ 프로그램도 DCMS가 심혈을 기울이는 역점사업이다.
“런던의 문화적 다양성은 세계에 자랑할 자원이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젊은이들이 영감을 갖고 참여하는 것이죠.” 테사 조얼 DCMS 장관의 설명이다. “올림픽을 계기로, 모든 커뮤니티와 배경에서 비롯된 젊은이들이 세계를 반갑게 맞아들이고 스스로도 커다란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런던=유윤종 차장 gustav@donga.com
▼런던 동부 ‘컨테이너 시티’
친환경 통해 또다른 개발▼
런던의 지역적 분화는 19세기에 이미 뚜렷했다. 강폭이 넓고 하구에 가까워 상선이 정박할 수 있는 템스 강 동쪽 지역에 가난한 부두노동자들이 몰려들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엔 하역시설과 생산시설이 빠져나간 자리를 서남아시아와 카리브 연안, 아프리카 출신 이민자들이 메웠다. 한편으로는 낙후된 이 지역에 대한 재개발도 끊임없이 이루어졌다. 1994년부터 개발돼 오늘날 시티 지역과 맞서는 영국 금융허브로 거듭난 ‘캐너리 워프’가 좋은 예다. 타워 햄릿 구의 옛 부두시설 지역이 9만여 명이 출퇴근하는 은행가로 변모했다.
그러나 이같이 초고층건물이 늘어선 현대적 개발 외에 전혀 다른 모델의 개발도 런던 동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001년 개발이 시작돼 2005년 개발 완료된 ‘트리니티 부이(Trinity Buoy)’ 지역은 환경친화적 콘셉트와 문화가 공존하며 큰 개발비용이 들지 않는 ‘대안형’ 도시재생의 사례를 보여준다.
이 지역 개발에 있어서 기본 전제가 된 것은 ‘재활용 소재를 80% 이상 사용한다’는 것. 이 같은 전제는 컨테이너만으로 이루어진 예술작업공간 ‘컨테이너 시티’를 탄생시켰다. 모든 ‘건물’은 컨테이너를 기하학적으로 쌓아 올린 뒤 수직 지지대를 받쳐 만들었다. 극단적인 더위나 추위가 없는 런던의 기후특성 덕택에 가난한 예술가들의 안락한 작업공간이 되어준다. 5월 기자가 이곳을 찾았을 때 이 마을의 조각가와 금속공예가, 음향예술가들은 기꺼이 자신의 공간을 공개했다. 금속작업에 열중하던 스티븐 씨(25)는 “주변지역에 비슷한 작업장을 구하려면 두 배의 임차료로도 불가능하다”며 “여기선 누구나 독립적이면서도 다른 사람의 작업으로부터 영감을 받을 수 있다. 템스 강을 바라보는 경치도 훌륭하다”고 만족을 표시했다.
※이 기사는 지난 1년간 SBS 문화재단의 후원으로 영국 런던대 골드스미스 칼리지에서 연수한 문화부 유윤종 차장의 보고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