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6일 황강댐 방류 원인은 도대체 뭘까. 발생 일주일이 되도록 속 시원한 답이 없다. 북은 우리 정부의 해명 요구에 사과 한마디 없이 “수위가 높아져 긴급 방류했다”는 무성의한 통지문만 보내왔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방류 나흘 만에 국회에서 “의도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것도 정황 분석에 따른 추정일 뿐 최종 결론이 아니다. 방류 당시 황강댐의 객관적 상황으로는 단순 사고보다 수공(水攻)일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水攻이라면 엄중한 군사적 사태
수공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필요 이상 많은 물을 한꺼번에 내려 보냈고 남쪽의 피해를 예상했을 텐데도 사전 통보하지 않았다. 지난달 27일 훨씬 더 많은 물을 방류한 이후 황강댐 일대에는 열흘간 비가 거의 안 내려 방류의 불가피성이 없었으며 댐 균열 등 기술적 문제가 생겼을 개연성도 낮다. 황해도를 통과해 서해로 흐르는 예성강 쪽 수문(水門)은 열지 않고 남쪽으로 향하는 임진강으로만 방류한 점도 수수께끼다.
만약 수공으로 결론이 난다면 남북관계와 김정일 정권의 운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수공은 군사적 성격의 공격 또는 위협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인적 피해를 예상하고도 캠핑객들이 잠든 휴일 새벽에 방류를 감행했다면 민간인 6명의 사망은 적어도 미필적(未必的) 고의에 의한 살인에 해당한다. 이는 군사적 제재까지 고려될 수 있는 엄중한 사태다.
수공의 의도에 관해서도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國葬) 때 조문단을 파견하고, 장기간 억류했던 현대아산 직원과 월경(越境) 어선 연안호 선원 4명을 돌려보내고,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제의하는 등 잇따른 유화 제스처에 남측이 말려들지 않자 위협을 가한 것이라는 풀이가 있다. 대남(對南) 유화 전략에 대한 군부의 불만 표출이거나 수공의 효과를 검증해보기 위한 실험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수공은 삼국지(三國志)나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 전사(戰史)에나 나오는 옛날의 전술이다. 지금은 단호한 군사적 응징을 부를 수 있는 어리석은 도발에 불과하다.
댐 방류가 설사 기술적 문제 등에 의한 사고로 밝혀지더라도 6명의 무고한 인명을 빼앗은 결과는 용납될 수 없다. 방류 사실을 사전 통보하지 않은 데 따른 사과와 손해배상 책임은 국제 협약과 인도주의 정신, 문명국가의 상식에 속한다. 북은 이에 관해 어떤 언급도 없다. 무지(無知)한 것인지, 뻔뻔스러운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괴상한 집단이다.
북은 작년 7월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씨를 사살하고도 1년이 넘도록 진상규명에 응하지 않고 사과도 하지 않았다. 김정일은 8월 중순 방북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만났을 때도 박 씨에 대해서는 일언반구(一言半句) 없이 외화벌이 수단인 금강산과 개성 관광 재개에만 관심을 뒀다.
‘상식 안 통하는 정권’ 다시 입증
황강댐 방류는 수공 여부와 상관없이 김정일 정권이 상식이 통하지 않는 집단임을 재차 만천하에 드러낸 사건이다. 이러고도 그들은 대미(對美) 직접회담과 남북대화 재개를 입에 올린다. 미국 여기자 2명과 현대아산 직원, 연안호 선원 4명을 인질로 잡았다가 석방한 뒤의 거짓 평화공세를 누가 믿겠는가. 양의 탈을 쓴 속임수이고 구걸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국제사회는 이제 북이 뭐라고 해도 쉽게 믿지 않을 것이다. 핵 협상 때 단골 무기로 쓰는 ‘살라미 전술’과 ‘벼랑 끝 전술’도 효용가치를 잃었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국제사회의 도움 없이는 생존조차 어려운 북의 최우선 과제는 국제관례와 상식을 존중하는 일이다. 황강댐 사건은 북의 의사결정 구조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드러냈을 뿐이다. 김정일 정권에 조종(弔鐘)이 울리고 있음을 다시 확인한 셈이다. 북의 핵개발과 급변사태에만 현명하게 대처한다면 그들의 자멸(自滅)은 시간문제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