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파란 약'으로 불리는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가 다음달로 국내 출시 10년을 맞는다. 1999년 이후 올해 6월까지 국내에서만 3043만여 정이 팔린 비아그라는 금기시 되던 '발기부전'이라는 용어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중장년층 성생활을 바꿀 정도로 변화를 불러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비아그라가 나오기 전만 해도 '발기부전'이라는 용어는 우리 사회에서 금기시 되는 말이었다. 중·장년층의 발기부전은 치료 대상이 아닌 '노화에 따른 당연한 현상'으로 치부하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비아그라가 등장하면서 발기부전 환자들이 음지에서 양지로 나오기 시작했다. 한국화이자가 120명의 의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2%가 '비아그라 발매 후 병원을 찾은 발기부전 환자가 늘었다'고 답했다.
'성생활 만족도와 삶의 질은 비례한다'는 인식도 확산됐다. 고려대 비뇨기과 천준 교수는 "예전엔 발기부전 치료제를 의사가 먼저 권했지만, 요즘에는 환자가 적극적으로 처방을 요구 한다"며 "성생활을 나이와 상관없이 즐기고 싶은 중·장년층의 욕망을 이제는 개인이나 사회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됐다"고 말했다.
'발기부전 환자와 비아그라를 통해 본 한국 남성의 남성성'이라는 논문을 발표한 전북대 고고문화인류학과 채수홍 교수도 "비아그라는 남성성의 취약함과 부끄러움을 공적인 무대로 등장시킴으로써 남성의 성에 대한 관념을 바꿨다"며 "성에 대한 남성과 여성의 의사소통이 늘어나게 하는 역할도 했다"고 분석했다.
비아그라는 전문의약품이므로 의사 처방전 없이는 구입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어둠의 경로'로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국내 밀수시장의 판도까지 바꿔놓았다. 관세청에 따르면 2005년 연간 90억 원에 그쳤던 '발기부전 치료제' 밀수는 2008년 346억 원, 올해 8월까지 464억 원 어치로 급증했다. 관세청 관계자는 "2005년 만 해도 액수 기준으로 밀수품목 상위 10위권에도 들지 못했지만 2008년부터 급증해 올해의 경우 지난 8월 기준 3위를 기록할 정도로 늘었다"며 "인터넷이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등을 통한 불법판매가 늘면서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비아그라를 판매하는 한국화이자 관계자는 "낱알이 아닌 병 단위로 포장된 비아그라는 모두 가짜이거나 밀수품"이라고 말했다.
약 800억 원 규모로 추산되는 국내 발기부전 치료제 시장은 초반에는 비아그라의 독주였지만 이후 다른 치료제가 속속 선을 보이면서 불꽃 튀는 혈전을 벌이고 있다. 제약업계에 따르면 현재 발기부전 치료제 시장은 비아그라가 약 47%의 시장점유율로 1위이며, 릴리의 '씨알리스', 동아제약의 '자이데나' 등이 그 뒤를 잇고 있다.
한상준기자 always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