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총액대출한도 축소 등 유동성 회수 검토
주택담보대출 계속 늘땐 은행 지준율 높일수도
한국은행과 금융당국이 시중에 풀린 유동성을 흡수하기 위해 총액대출한도를 줄이거나 중소기업 대출을 축소하는 유동성 환수 정책들을 검토하고 있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10일 연내 금리인상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가계 실질소득이 줄어드는 등 금리인상의 부작용이 만만치 않은 만큼 상대적으로 강도가 낮은 정책 수단을 통해 시장 안정을 꾀하려는 것이다.
상당수 전문가도 시중자금을 조금씩 거둬들이는 저(低)강도 출구전략을 단계적으로 추진해 시장에 주는 충격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10월 중 저강도 출구전략 검토
유동성 흡수를 위해 한은은 이르면 다음 달 총액대출한도를 축소하는 방안을 우선 검토할 가능성이 높다. 총액한도대출은 한은이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은행에 시중금리보다 낮은 금리로 자금을 배정하는 제도로 작년 10월 6조5000억 원이던 한도가 9조 원으로 확대된 뒤 올해 3월 10조 원으로 증액됐다.
또 한은은 한미 스와프협정을 통해 올해 1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서 들여온 163억5000만 달러의 대부분을 연내 상환할 계획이다. 현재 117억5000만 달러를 상환하고 46억 달러만 남겨두고 있다. 외환시장 상황이 개선되고 있어 시중에 달러를 계속 공급할 필요가 없다고 본 것이다.
은행이 고객의 예금 중 한은에 예치해 두는 비율인 지급준비율을 높여 시중 통화량을 줄이는 방안도 검토 대상이다. 경제위기 이후 지준율을 조정한 적이 없어 유동성 공급을 원점으로 돌리는 정책들과는 성격이 다르지만 주택담보대출 증가세가 꺾이지 않을 경우 금리 인상에 앞서 시행할 강도 높은 카드라는 게 금융계의 분석이다.
채권 발행량을 통해 시중 유동성을 조절하는 공개시장조작 대상 증권의 범위를 축소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지금은 국고채, 정부보증채, 통화안정채, 은행채, 주택금융공사채 등이 공개시장 조작에 활용되지만 11월부터는 은행채와 주택금융공사채가 제외된다.
금융당국은 중소기업의 자금난을 덜기 위해 연말을 시한으로 2월부터 시행한 보증확대 및 만기 연장조치들을 내년 이후로 연장할지를 다음 달에 결론짓기로 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10월 경기동향을 살펴 10월 말에 보증확대 방안을 유지할지, 종료할지를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6월 말로 예정됐던 은행채무 지급보증 시한은 연말로 연장했지만 추가 연장은 하지 않을 방침이다.
○집값 안정 여부가 변수
최근 출구전략 논의가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라 재점화된 측면이 있는 만큼 유동성 흡수의 강도와 시행 시기는 향후 집값 동향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정부는 소득에 따라 대출을 제한하는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의 적용범위가 수도권 전역으로 확대된 7일 이후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 증가세가 둔화하긴 했지만 대출 수요가 은행에서 보험사나 저축은행 등으로 옮겨갈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 수도권 집값 상승 폭이 대체로 둔화되긴 했지만 서울 관악구 노원구 등지의 매매가격이 많이 오르는 등 서울 강남 3구(강남, 서초, 송파구) 위주의 가격 상승세가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는 조짐을 보이는 점도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은 “강도가 너무 세 ‘소 잡는 칼’에 비유되곤 하는 금리 인상조치를 시행하기에 앞서 중소기업 채무 만기 연장과 지급보증 축소 같은 분야별 정책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