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모 루덴스/요한 호이징하/까치글방
일상의 탈출구 ‘놀이’가 인류문화를 만들어왔다
익숙함 속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확인하는 것은 우리를 빠져들게 한다. 간단한 수수께끼를 풀거나 레고 블록을 조립할 때, 책을 읽을 때의 표정들이 그렇다. 익숙함을 벗어날 때는 또 어떤가. 온몸에 진흙을 바르고 구르는 머드 축제나 토마토를 던지며 노는 축제에 사람들은 기꺼이 몰려든다. 자발적으로 몰입하고 진지하게 ‘놀고 있는’ 사람들, 오늘의 주제는 바로 이들이다.
요한 호이징하는 놀이가 인간 문화에 미친 영향과 의의를 탐구한 대표적인 학자이다. 그에 따르면 놀이는 문화의 하위개념이 아니라 인간의 삶 그 자체이다. 인간은 놀이하면서 살아왔고, 놀이를 통해 문화가 발전해 왔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 ‘호모 루덴스(유희적 인간)’는 놀이를 인간의 본질적 특성으로까지 격상시킨 그의 의도를 보여준다.
호이징하는 놀이의 특징으로 무엇보다 ‘자유로움’을 끄집어낸다. 어린 아이들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소꿉놀이나 비행기 놀이를 한다. 진짜가 아님을 알면서도 아주 쉽게 ‘그런 척’을 한다. 그저 자신을 표현하고 또래들과 사회적 관계를 연습한다. 그래서 놀이는 생존이나 번식 같은 동물적 과제를 넘어 인간만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문이 된다.
놀이는 일상적인 생활이 아니라 ‘일시적인’ 활동이다. 필통을 비행기라 여기며 노는 아이는 놀이가 끝나면 다시 필통으로 대한다. 애절한 소설을 읽으며 눈물 흘리던 여대생도 소설을 다 읽으면 자기 삶으로 돌아간다. 원시축제나 현대의 일요 종교의식도 비슷하다. 쌀자루를 흔들면 곡식이 더 알차게 담기듯, 놀이는 평범했던 일상을 새롭게 만든다.
무엇보다 놀이는 제한된 곳에서만 진행되며 시간이 지나면 끝나지만, 계속 반복된다. 치열한 수 싸움을 벌이는 바둑도, 기다렸던 축구경기도 마찬가지다. 각 놀이터에는 나름의 규칙이 있고 이 질서는 절대적이다. 만약 규칙을 거부하면 놀이공동체는 해체된다. 윷놀이 판에서 말이 움직이는 규칙처럼, 참가자들은 놀이를 반복하면서 질서에 따르고 또 질서를 창조한다. 놀이는 인간을 조직화할 뿐 아니라 아름답게 질서 잡힌 형식을 추구한다.
그런데 일상생활 밖의 놀이가 우리를 그리도 강렬하게 사로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경쟁을 통한 긴장과 해소의 과정 덕분이다. 스포츠나 전쟁처럼 싸워 이겨야 할 상대가 분명할 때 놀이의 긴장은 고조된다. 삼국지 같은 소설에는 양측의 장수끼리 서로 합을 겨루어 승패를 결정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서양 중세도 왕이나 기사들이 결투 형식으로 대결하고 패한 쪽은 사후 복수를 금하였다. 이기고픈 욕망을 발산하고 해소하는 과정에서 ‘공정한’ 룰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훗날 국제법의 기초가 된 기사도의 룰은 놀이의 역할과 기능을 잘 보여준다.
호이징하의 독창성은 거의 모든 문화양식 속에서 놀이적 성격을 찾아낸다는 점에 있다. 카드놀이나 스포츠 같은 오락적 행위뿐 아니라 종교, 철학, 예술의 전 방면에 이르기까지 두루 섭렵한다. 레고 블록을 조립하듯 각각의 놀이가 문화가 되는 과정이 흥미롭다.
예컨대, 수수께끼 시합의 전통은 우주의 원리와 인생의 진리에 관한 제의적 행위에서 출발한다. 왕이나 제사장이 되기 위해, 또는 서로의 권력과 지위를 위해 수수께끼를 내고 그것을 푸는 게임을 하면서 경쟁이 진행된다. 그런데 책의 말미에서 호이징하는 걱정이 가득하다. 그는 현대문명을 ‘미숙한 문명’로 규정하면서 겉으로는 놀이인 척하고 있지만 진정한 놀이가 아니라고 비판한다. 상업성과 선정주의에 물든 예술이나, 대중과 소통하지 않고 연구실에 틀어박힌 학자들, 대량학살과 생체 실험이 자행되는 전쟁 등은 모두 놀이정신을 상실한 변종들이기 때문이다. 호이징하의 걱정에 무어라 대답할까. 놀이의 왜곡은 문화의 오염이기에 우리의 근심도 함께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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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정 상명대 부속여고 철학·논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