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이 대답 대신 석범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당신, 알아요? 이렇게 따져 물을 때 정말 귀엽다는 거?"
당황하는 석범을 무시한 채, 하체를 덮었던 수건을 내리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석범도 모래사장을 가로질러 그녀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여전히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다.
5분 쯤 바다를 향해 헤엄치던 민선이 방향을 바꿔 뒤를 살폈다. 방금 전까지 허푸 허푸 숨소리를 내며 따라오던 석범이 보이지 않았다.
"석범 씨!"
민선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돌아오는 것은 갈매기 울음뿐이었다. 민선이 방향을 바꿔 달섬 쪽으로 헤엄치려는 순간, 무엇인가가 그녀의 오른 발목을 쥐고 힘껏 당겼다. 그녀의 어깨와 얼굴 그리고 머리가 단숨에 수면 아래로 쏙 빨려들었다. 치켜든 양손이 휘적휘적 바닷물을 쳐댔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때 저절로 오른 발목이 풀렸고 민선은 곧 수면으로 나왔다. 뒤이어 석범이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쏟으며 등 뒤에서 그녀를 안으려 했다. 민선이 그 손길을 뿌리쳤다. 석범이 다시 그녀에게 다가와서 등 뒤에서 힘껏 안았다.
"미안 미안! 놀랐어?"
석범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그녀가 천천히 돌아서서 품에 안겼다. 달섬으로 나올 때까지 계속 눈물을 흘렸다. 바닷가에 철퍽 앉아서도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석범은 그녀의 어깨에 팔을 두른 채 도닥이며 기다렸다.
"…… 무서웠어요. 최 교수와 단 둘이 있었던 장면들이 수도 없이 떠올랐거든요…… 지난 밤에는 꿈에서까지 최 교수가 나와서 누군가의 두개골을 쪼개는…… 아, 냉정한 사람이니까, 내 머리를 쳐다보면서도 어떻게 저걸 잘라서 뇌를 꺼낼까 생각했을 테지요. 난 그것도 모르고 글라슈트의 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해 이런저런 제안을 했었답니다."
"쉬이이이! 그냥 가만있어. 최 교수 얘긴 그만 하고. 말할수록 더 무서워지는 법이야."
민선이 석범의 품을 더 파고들었다.
"이제 밤에 날 혼자 버려두지 않을 거죠? 언제나 곁에 있을 거죠?"
"……그래."
"약속해요?"
"약속해."
민선은 모래가 묻지 않은 손등으로 두 눈에 눈물을 훔쳤다. 석범이 발밑에 놓인 조개껍질을 하나 주워 바다에 던지며 지나치듯 물었다.
"한데 왜 그랬을까?"
"뭐가요?"
"최 교수 말이야. 왜 사람의 뇌를 글라슈트에 얹었을까?"
민선이 석범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되물었다.
"몰라서 묻는 건가요?"
"짐작은 하지만…… 당신은 전문가잖아?"
민선이 잠시 즉답을 미루고, 자신도 조개껍질을 주워 던졌다. 멀리 날아가지 못하고 떨어진 조개껍질이 파도에 쓸려 다시 그녀에게 왔다. 그 조개껍질을 주워들었다.
"한 가지만 약속해줘요. 나 증언은 안 해요. 최 교수가 살인마라고 해도 우린 동료였어요. 글라슈트를 우승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요. 뇌과학자들은 얼마든지 있으니, 난 빼줘요. 구두든 수면이든 어떤 식으로도 증언하지 않겠어요."
석범이 그녀와 눈을 맞춘 채 조용히 머리를 끄덕였다.
"나만 알고 있지. 약속해."
민선이 시선을 거두어 정면 바다만 쳐다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글라슈트는 '배틀원 2049'에서 우승할 확률이 매우 적었어요. 최 교수가 대회 직전까지 새로운 프로그램을 적용시켜 경기력을 배가시키려고 노력했지만 역부족이었죠. 오히려 시스템이 불완전하고 에러가 잦아서 시합 중에도 내내 조마조마했답니다. 32강전과 16강전은 졸전이었죠. 승리한 것이 신기할 정도였어요. 아마도 최 교수는 이런 졸전을 예상했을 겁니다. 그래서 특단의 조처가 필요했던 게 아닐까요?"
"특단의 조처!"
"프로그램만으론 강화하기 힘든 공격력을 '분노하는 뇌'를 통해 확보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물론 뇌를 격투 로봇에 장착시키는 일이나 뇌세포가 죽지 않고 일정 기간 동안 살아 있도록 만드는 일 등 풀어야할 난제가 쌓여 있었지요."
"분노한 뇌를 로봇과 이었다고 그런 가공할 힘이 생겨난다고?"
석범은 믿기 힘든 얼굴이었다. 민선이 정색을 하고 답했다.
"생겨나고말고요. 위급한 상황에서 인간의 발휘한 초능력에 관한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아요? 그게 다 '뇌의 힘'이 발휘되었기 때문이에요. 우린 아직 뇌의 신비를 천 분의 일도 풀지 못한 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