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0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민주당의 하토야마 내각이 공식출범한다. 일본이 전후 처음으로 본격적인 정권교체를 경험하게 됐다.
이번 총선 결과를 단순화하면 민주당 승리는 자력으로 거둔 성과로 보기 힘들다. 오히려 자민당의 패배가 민주당이 압승하는 데 3분의 2 이상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4년 전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 하에서 자민당이 대승을 거둔 것과 마찬가지로 소선거구 제도가 승패의 격차를 더 벌렸고, 이번 선거에서 여야의 입장이 뒤바뀐 것.
하지만 이번 선거의 승패에는 그동안 일본 정치의 저류에 흐르고 있던 ‘지각변동’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 중 하나다. 선거의 쟁점 자체에 이전과 다른 큰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전후 일본 정치는 ‘1955년 체제’로 불리는 자민당 우위의 정치시스템에 의해 유지돼 왔다. 그동안 자민당과 비자민당을 나누는 대립축은 안전보장 헌법 영토 역사 등을 포함한 안보축(또는 냉전축)과 시장경쟁이냐 재분배냐는 경제축이었다. 이 두 대립축에서 일본 국민은 그동안 안전보장과 경제성장을 선택해 왔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국민은 안보축을 무시하고 경제축으로서는 재분배를 선택했다.
일본 국민이 이 같은 선택을 한 원인은 무엇일까. 일본에서도 냉전이 종식되고 버블붕괴와 국제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계층 간 격차는 더욱 벌어져 사회적 폐해가 심각해졌다. 고이즈미 개혁의 마이너스 측면이 부각됐고, 고용 복지 의료에 대한 불만이 폭발했다. 국민의 관심은 비정규직의 증가, 사라져버린 연금, 고령자 복지서비스, 보육지원 등에 집중됐다. 야스쿠니신사 참배도 북한의 핵실험도 이번 선거에서는 그다지 쟁점이 되지 못했다.
많은 국민은 앞으로 자민당의 재생과 2대 정당체제의 정착을 기대하고 있다. 자민당이 건전한 야당으로 거듭나고 민주당 정권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4년 후에 다시 민주당에서 자민당으로 정권교체가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당분간은 현재진행 중인 ‘지각변동’이 일본 정치를 지배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일본의 대외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예컨대 민주당이 총선거 승리 이후 가장 주목하고 있는 정책 중 하나가 선거공약에서 표명한 ‘긴밀하고 대등한 일미관계’다. 사민당 및 국민신당과의 연립 협의에서는 인도양에서의 자위대 급유활동, 미군 재편과 기지문제, 재일미군의 지위협정 등 ‘오래된 쟁점’을 전면 재검토할 뜻을 밝혔다. 또 미국 버락 오바마 정권의 정책과 일치하는 환경 및 에너지 정책을 대담하게 도입하려 하고 있다.
새 정권은 대미 관계뿐만 아니라 아시아를 중시하는 정책에도 관심을 쏟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민주당 대표는 이미 역사문제에 대해 솔직한 자신의 의견을 표명했다. 앞으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지 않겠다고 했을 뿐만 아니라 종교와 종파를 넘어선 국립추모시설을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민주당 간사장 내정자도 재일본 한국인에 대한 지방참정권 부여에 적극적이다. 이 같은 민주당 정책은 장기적으로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으로 수렴돼 갈 것이다.
다만, 새로 들어설 정권은 북한 관련 정책에 대해 구체적인 방침을 가지고 있지 않다.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추구라는 원칙하에 유연성을 발휘하는 기본방침을 토대로 한미 양국과 공유할 수 있는 대북 정책을 시급히 구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침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도 민주당 정권에 ‘성과 있는 관계 만들기’를 제안하고 나섰다.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