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경PNC(현 AK켐텍)에서 휴대전화용 도료를 생산하고 있는 모습. 애경은 설립 초기 비누회사였지만 화학 분야에 꾸준히 투자한 결과 지난해 기준 화학 분야 매출이 전체의 40%에 이른다. 사진 제공 애경그룹
化學報國
화학제품 통한 소비자 행복 추구
아토피 치료제 등으로 영역 넓혀
순수학문 등한시 풍토 안타까워
나는 애경의 기업정신을 ‘케미토피아’라고 설명하곤 한다. 케미스트리(Chemistry·화학)와 유토피아(Utopia·이상향)를 합친 말이다. 화학을 통해 개발한 제품으로 소비자를 더 행복하게 만들자는 것이다.
화학으로 애경을 기르고 키우겠다는 생각은 1983년 애경유지공업 중앙연구소를 세우면서 더욱 체계화됐다. 1980년대 초 시장 개방을 앞두고 국내 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민간연구소 설립이 급증했다. 1982년 말 현재 70개 가까운 기업이 민간연구소를 세워 운영하고 있었다. 이런 시대 상황에서 설립된 애경유지 연구소는 2001년 10월 화학 및 생활용품 계열사 연구 인력을 한데 모은 애경종합기술원으로 확대 개편됐다.
느리지만 꾸준하게 화학공업에 투자한 결과 애경유화 1억불 수출탑(1991년), 애경화학 1000만불 수출탑(1993년), 애경소재 500만불 수출탑(1996년), 애경유화 철탑산업훈장 수상(1997년), 애경유화 2억불 수출탑 수상(2006년) 등의 성과를 이어 갔다.
1990, 2000년대에도 화학을 애경의 근간을 이루는 산업이라 여기고 설비증설 및 연구개발(R&D)에 지속적으로 투자했다. 1993년 충남 청양군에 대지 9300평(3만743.94m²)의 청양공단을 준공했고, 1999년에는 애경유화가 애경그룹 계열사 최초로 코스피에 상장됐다.
계열사도 늘어났다. 1990년 9월 설립된 애경소재는 각종 산업용 무기화합물을 생산 공급하고 있다. 코스파는 1991년 4월 애경의 11번째 계열사로 합류했는데, 정밀제품을 포장하거나 자동차 범퍼를 만들 때 쓰는 에너지 흡수체인 발포 폴리올레핀 성형물을 생산한다.
최근에는 인체에 적용 가능한 화학물질로도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첫 사례는 애경PNC(현 AK켐텍)이다. AK켐텍은 발포성 내화도료와 휴대전화용 도료를 생산하는데, 해당 분야에서 국내 시장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휴대전화용 도료는 뺨이나 귀에 직접 닿기 때문에 독성이 없어야 하고 내구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생산할 때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AK켐텍에서 생산되는 휴대전화용 도료는 휴대전화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중국 베트남으로 활발히 수출하고 있다.
네오팜은 인체의 내부에서 작용하는 화학물질, 즉 약품을 생산한다. 네오팜은 애경 연구소에서 발견한 화학물질인 유사세라마이드를 바탕으로 아토피 치료제를 생산하고 있다. 1998년 유사세라마이드의 식품의약품안전청 등재를 마치고, 이를 바탕으로 2000년 7월 자본금 2억 원으로 설립됐다. 네오팜은 최근 항암제와 아토피, 천식치료 항체, 당뇨 치료제 후보물질을 보유하고 있는 ‘아리사이언스’를 인수해 바이오 제약회사로 탈바꿈할 준비를 하고 있다. 네오팜은 애경그룹의 두 번째 상장사(코스닥·2007년)다.
37년 전, 내가 애경호의 방향키를 잡았을 때는 애경유지와 삼경화성을 주축으로 4개 회사뿐이었는데 이제 애경의 계열사는 화학, 생활항공, 유통 부동산 부문 등 20여 개로 늘어났다. 이 중 화학 부문 매출은 1조5000억 원(2008년 기준)으로 전체 그룹 매출의 40%에 이른다.
최근 우리나라 대학이나 고교 3학년 수험생들은 화학 수학 생물학 물리학 등 기초학문을 등한시한다고 들었다. 문과에서도 마찬가지로 철학 문학 미학 등 순수학문을 다루는 학과로는 진학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기초학문이 튼튼해야 실용학문이 제대로 설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았으면 한다. 국가적으로도 순수학문의 토대가 탄탄하지 않으면 인력과 산업이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어렵다. 최근 인문학이나 자연과학에 대한 대중 강연이 늘어나는 등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다행스럽다. 이공계에 대한 정부와 사회의 관심과 지원도 필요하다. 내가 미국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이유도 당시 이공계를 선택해야만 4년 전액 장학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당시 미국 정부의 그러한 파격적인 지원이 지금의 미국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최근 회자되고 있는 통섭(統攝·Consilience)이 활성화된다면 순수학문도 사회에 크게 기여할 날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