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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 윈도]가을 남자의 선택 ‘윙 팁 슈즈’

입력 | 2009-09-18 02:58:00


내가 사는 동네에 환자들이 끊이지 않는 개인 병원이 있다. 40대 남자 원장 A는 병이 잘 낫도록 족집게 처방을 하고, 어르신들에게도 깍듯하다. 그런데 이 병원을 찾는 30대 젊은 엄마들은 A의 잘생긴 외모에도 후한 점수를 준다. 어느 날 감기에 걸린 아기를 데리고 이 병원에 갔다. 의사가 들이대는 무시무시한 콧물 빼내는 기구에 발버둥치는 아기를 꽉 부둥켜안다가 우연히 A의 구두에 시선이 꽂혔다. 빈티지 느낌이 나는 빛바랜 갈색 윙 팁(앞코에 W자 재봉선이 들어간 스타일) 슈즈! 흰색 의사 가운 밑으로 에지 있는 하이힐이 드러나던 친분 있는 미모의 여의사가 순간 떠올랐다. 비록 흰 가운으로 몸을 가렸지만 A의 패션 감각도 발끝에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서양 복식에서 비롯된 남자 구두의 종류는 여럿 있다. 앞코가 긴 스트레이트 팁 슈즈, 끈으로 묶는 레이스 업 슈즈, 금속으로 된 버클이 달린 몽크 스트랩 슈즈, 끈이나 버클 없이 발등을 덮는 로퍼…. 그런데 올가을 대세는 바로 윙 팁 슈즈다. 내가 아는 20대 후반 남자도 와이셔츠와 정장 바지의 평범한 직장인 차림이 뭔가 달라 보였다. 단지 갈색 윙 팁 슈즈를 신었다는 이유만으로….

각 회사에서 비즈니스 캐주얼 드레스 코드가 늘어나면서 약간 빛바랜 듯한 갈색 구두가 인기 몰이 중이다. 특히 윙 팁 슈즈는 독특한 장식이 멋스러워 정장과 캐주얼에 두루 잘 어울린다. 패션에 대한 남성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롯데백화점 본점은 올봄 남성화 매장을 기존보다 21m²(6.3평) 확대했다. 전체 매출에서 갈색 구두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10%에서 올해 58%까지 급성장했다.

여자 구두도 올가을엔 빈티지풍이 강세다. 부티(발목 부츠)와 글래디에이터 슈즈(여러 겹의 줄로 발을 감싸는 구두)도 자연스러운 느낌의 스웨이드 소재가 많아졌다. 지난여름 ‘킬 힐’(굽이 매우 높은 구두)의 인기에 따라 여전히 높은 굽이 쇼윈도에 많지만, 이런 구두는 특별히 예뻐지고 싶은 날 신었으면 좋겠다. 드높은 가을 하늘을 만끽하며 산책을 하거나, 서점에 들러 하염없이 책을 들춰 보기엔 아무래도 평소 신어 익숙한 굽 낮은 구두가 편안할 테니. 다만 남편이나 애인의 패션 지수를 한 단계 높여주고 싶다면 갈색 윙 팁 슈즈 한 켤레는 장만해 줘도 좋을 것 같다. 가을, 남자, 갈색은 썩 근사한 조합이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