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잘살아 보세’(2006년)에서 산아(産兒) 관리요원으로 분한 김정은은 출산율 99%를 자랑하는 농촌마을에 내려가 밤마다 가가호호를 방문해 “이러시면 곤란합니다”며 주민의 ‘밤일’을 방해한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박정희 시대를 배경으로 아이들을 그만 낳으라고 설득하는 계몽여성과 ‘농사 중엔 자식농사가 최고’라는 사고방식을 가진 주민의 갈등을 코믹터치로 그린 영화다. 강력한 산아제한 정책을 기억하는 중장년 세대는 영화를 보며 아련한 추억을 떠올렸을 것이다.
▷산아제한을 위한 표어는 독재시대라는 상황과 맞물려 그렇겠지만 지금 들어봐도 살벌하다. 1970, 80년대 기차역이나 버스터미널에는 어김없이 인구시계탑이 있었다. 몇 초마다 늘어나는 인구를 보여주는 전광판은 아이 낳는 일에 국민이 죄의식을 갖도록 만들었다.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란 표어는 점잖은 편이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표어에는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 못 면한다’(1963년)도 있다. 가난한 시대였기에 다(多)출산을 빈곤과 동일시하는 전략은 효과가 있었다.
▷소득수준이 높아지고 두 자녀가 일반화했던 1980년대에는 ‘한 자녀 갖기’와 ‘딸 아들 차별 않기’가 인구정책의 목표였다.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1980년)’, ‘둘도 많다. 하나 낳고 알뜰살뜰’(1982년)은 80년대에 나온 가족계획 표어다. 1990년까지도 ‘엄마건강 아기건강 적게 낳아 잘 키우자’는 표어가 있었지만 산아제한 열기는 수그러들었다. 1994년 정부가 산아제한정책 포기를 선언한 뒤 1998년 가족계획협회도 산아제한을 위한 인구교육을 중지했다.
▷저출산이 국가적 재앙이 될 정도로 심각해지면서 중단됐던 인구교육이 다시 등장할 모양이다. 이번엔 적게 낳자가 아니라 많이 낳자는 내용이니 격세지감이 든다. 한나라당 원희목 의원이 발의하는 인구교육지원법안에는 결혼과 출산의 가치, 가족의 소중함을 학교와 군대에서 가르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인구교육도 중요하지만 기대와 현실 간의 격차를 메워주는 구체적인 정책이 따라야 한다.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들이 기대하는 자녀수는 2.3명, 실제 낳는 자녀수는 1.19명이다. 낳고 싶어도 마음대로 못 낳는다는 얘기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