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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 광케이블 덕에 인터넷 쇼핑하고 IPTV로 영어 공부

입력 | 2009-09-19 03:03:00

경북 울릉군 저동읍 ‘달동네’ 아이들에게 컴퓨터와 인터넷TV(IPTV)가 있는 동산교회 공부방은 최고의 쉼터이자 놀이터다. KT 울릉지사 김장철 과장(맨 위)이 동료와 함께 KT가 기증한 컴퓨터와 IPTV의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공부방을 찾았다. 사진 제공 KT


바닷속 길이 159km ‘빛의 다리’
외로운 울릉도에 웃음을 선물하다

《울릉도는 외롭다. 1970년대 3만 명에 이르던 인구는 1만여 명으로 줄었다. 이 가운데 4분의 1은 울릉도로 발령을 받거나, 울릉도를 오가며 사업을 하는 타지 전입자들이다. ‘울릉도 토박이’는 수천 명밖에 되지 않아 외롭고, 타지인은 그보다 훨씬 수가 적어 더 외롭다. 이들이 모여 사는 섬의 밤, 그 일부를 TV와 컴퓨터 모니터에서 새어 나오는 작은 불빛들이 밝힌다. 이 빛의 일부는 저 먼 육지로부터 찾아온다. 수심 2km의 깊은 바다를 지나 육지와 섬을 연결하는 159km 길이의 ‘빛의 다리’, 해저 광케이블을 통해서다.》

○ 섬과 육지 사이에 놓인 ‘빛의 다리’

섬의 추석은 고달프다. 제사상에 올릴 음식은 많은데 대부분 음식 재료와 선물은 뭍에서 ‘수입’해야 하니 값이 비싸다. 2000년에 필리핀에서 울릉도로 시집온 손정현(필리핀명 아그리피나 아순시온) 씨는 새로운 요령이 생겼다. 인터넷 쇼핑이다. 섬에서 고구마 1kg의 가격은 3500원 전후. 하지만 인터넷쇼핑몰 옥션에서 고구마는 10kg에 1만2000원 선이다. 배송비(약 3000원)를 내도 훨씬 싸다. 손 씨는 ‘프렌드스터’(한국의 싸이월드와 비슷한 서비스)로 고향의 가족과 친구들 소식도 듣는다. 그녀에게 인터넷은 세상과의 통로다.

섬의 밤은 조용하다. 노을이 물러가고 어둠이 내리면 골목은 조용해지고 인적도 뜸해진다. 하지만 한 곳만은 예외다. 가난한 선원들이 모여 살아 ‘달동네’라는 이름이 붙은 저동읍 고지대 동산교회의 공부방이다.

안재익 목사는 2003년 교회를 세우고 작은 공부방을 열었다. 정원은 29명이지만, 두 돌 된 어린애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40여 명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드나든다. 목사 내외가 저녁식사를 해주고, 컴퓨터와 인터넷TV(IPTV)도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단 3분도 진득하니 앉아 있지 않지만, 공부방의 IPTV에서는 끊임없이 간단한 영어회화 방송이 흘러나왔다. 저녁을 먹은 아이들은 IPTV로 만화를 보고, 컴퓨터로 온라인게임을 하며 저녁 시간을 보냈다. 서울의 아이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이 저녁 시간은 빛의 다리 덕분이다.

섬은 섬과 만난다. 도동읍 손 씨의 집과 저동읍 동산교회를 지난 빛은 전파로 변해 동쪽 87.4km 바다 위 독도로 극초단파 송수신탑을 통해 흘러간다. 파도가 높아 배가 못 떠도 전파는 모든 것을 뚫는다. 독도 거주자는 ‘독도 주민’으로 유명한 김성도 씨 내외와 경북 해양경찰대 대원 40여 명이 전부지만 빛의 다리는 오직 이들만을 위해 휴대전화망과 인터넷을 연결시킨다. 협소하고 험한 지형 탓에 1년에 약 80일밖에 배를 댈 수 없는 독도. 그래서 독도 거주자들은 통신이 끊긴 삶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 비효율의 섬

이윤만을 생각하는 기업이라면 이곳을 외면하는 게 정상이다. KT 울릉지사는 2007년 기준 23억 원의 매출을 올리기 위해 33억 원의 비용을 썼다. 울릉도의 초고속인터넷 가입자는 관공서와 가정 등을 모두 합쳐 약 5000명이다. 보급이 포화 상태라 성장성도 없는 곳이다. 이곳에 KT가 남아 있는 이유는 단 하나다. 주민들에게 통신망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적자에 익숙한 KT 울릉지사 직원들은 회사원보다 봉사요원에 가까운 삶을 산다. 이주여성들에게 한글과 한국어를 가르치기 시작한 것도 이들이었고, 동산교회 공부방과 산 중턱의 노인요양원에 TV를 놓아주고 생필품을 전달하며,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목욕시켜 주는 것도 이들이다.

울릉지사에서 8년째 근무하고 있는 김장철 과장은 포항 사람이다. 주말마다 가족을 보기 위해 세 시간씩 배를 타고 뭍으로 나간다. 쉽지 않은 생활이지만 불평은 없다. 기자는 섬 곳곳을 찾아다니던 세 시간 동안 수리 장비를 실은 KT 트럭과 세 번 마주쳤다. “섬이라고 본사에서 신경을 쓰지 않아 고장률이 높은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 과장은 “형광등도 고쳐주고, 밥솥도 고쳐줘야 해서…”라며 웃었다. 김 과장의 본업은 통신 설비를 유지 보수하는 일이다. 하지만 섬에서 그의 본업은 ‘봉사’였다.

울릉도=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