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총회와 주요 20개국(G20) 금융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방미 중인 이명박 대통령은 어제 뉴욕 코리아소사이어티 연설에서 북핵 문제를 ‘진전과 후퇴, 그리고 지연을 반복한 과거 패턴’에서 벗어나 근본적으로 풀기 위한 통합적 접근법으로 ‘그랜드 바겐’을 제의했다. 이 대통령은 “북이 핵 프로그램의 ‘핵심 부분’을 폐기하면 동시에 북한에 확실한 ‘안전보장’을 제공하고 국제지원을 본격화하는 ‘그랜드 바겐’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핵을 둘러싸고 북-중(北-中) 간 협의와 북-미(北-美) 간 모색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나온 이 제안은 북의 핵 포기를 끌어내기 위한 종합선물세트라고 할 수 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18일 다이빙궈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에게 “비핵화 문제를 양자 또는 다자 대화를 통해 해결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미국도 조건부 북-미 양자대화를 예고해 놓은 상태다.
이 대통령은 6월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에선 기존의 대북 협상 틀인 단계적 보상과는 다른 ‘포괄적 패키지’를 제안했다. 북의 비핵화 조치와 이에 상응하는 보상을 한번에 해결한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핵문제 해결과 경제지원이라는 아이디어 차원이었지만 이번에는 북의 체제보장을 의미하는 안전보장이란 표현과 국제사회 지원이 들어가 6월 제안보다 진전된 내용이다.
북이 최근 유화 공세를 계속하고 미국과의 대화뿐 아니라 다자 대화에도 응하겠다는 신호를 보냈지만 국제사회는 ‘제재를 완화해 곤경에서 벗어나려는 악습의 되풀이’로 보는 냉소적 반응이 우세하다. 북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는 바닥에 가깝다. 그동안 북은 도발로 위기국면을 조성한 뒤 국제사회가 제재 조치를 취하면 회담을 제의해 주변국들로부터 양보와 보상을 받아내는 전술로 여러 차례 재미를 봤다. 국제사회에는 이 같은 전술에 넘어가지 않으려는 기류가 강해졌다.
북이 미국과의 양자대화나 6자회담을 시간벌기에 이용할 생각이라면 착각이다.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포괄적인 경제 지원을 받을 기회가 계속 오지는 않을 것이다. 북이 이번 기회를 놓치면 국제사회의 제재는 더 강화될 수밖에 없고 김정일 정권의 안전도 보장받을 수 없다. 북은 핵 폐기를 행동으로 보여줘야만 국제사회의 고립과 경제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