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 제멋대로 술병을 손에 든 사내들. 어두컴컴한 바에는 사람 한 명이 겨우 올라갈만한 크기의 무대가 있다.
이 작은 무대 위에 짙은 화장을 하고 속살을 드러낸 육감적인 몸매의 젊은 여자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야릇한 표정으로 천정까지 닿은 봉에 매달려 온몸을 흔들면서 객석을 향해 섹시함을 발산한다. 영화 속에 나오는 '봉춤'(pole dancing)은 늘 이런 장면을 보여준다.
그런데 불혹을 앞둔 남성이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봉춤에 도전해 화제라고 더 선이 22일 보도했다. 올해 스코틀랜드 봉춤 경연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폴 맥길 씨(38)가 그 주인공.
맥길 씨는 이 대회 참가자 중 유일한 남성이었다. 다른 후보들이 모두 소위 '쭉쭉빵빵' 몸매를 자랑하는 젊은 여성이었기 때문에 그가 돋보인(?)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그저 '이상한 아저씨'로 취급됐을 뿐 아무도 맥길 씨의 우승을 예상하진 못했다.
맥길 씨는 그러나 남성 특유의 힘이 넘치는 춤사위와 자유자재의 몸놀림으로 '한 봉춤' 한다는 여성 후보들을 누르고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는 11월 맨체스터에서 열리는 영국 봉춤 대회에 스코틀랜드 대표로 출전한다. 이 대회에서도 맥길 씨는 유일한 남성 참가자다.
맥길 씨의 우승은 '청출어람'(靑出於藍)으로 불릴만한 결과다. 그를 가르친 12세 연하의 여자 스승이 3년 전 이 대회에서 우승한 '봉춤의 달인' 에일린 다니엘 씨(26)이기 때문. 다니엘 씨도 올해 대회에 출전했으나 제자의 뛰어난 실력에 밀려 챔피언 자리를 양보하게 됐다.
다니엘 씨는 "남자에게 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주변 사람들이 아직도 내가 남자에게 밀려난 것을 두고 놀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제자인 맥길 씨에 대해선 "솔직히 그는 정말 뛰어난 실력을 지녔고 그가 우승해 기쁘다"며 추켜세웠다. 맥길 씨는 다니엘 씨가 운영하는 봉춤 연습실에서 1년 동안 동작 하나하나를 전수받으며 열성을 보였다고 한다.
미용사인 맥길 씨는 "내가 대회 무대에 오른 유일한 남자였지만 우승하게 돼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몸매 관리를 위해서 이 춤을 춘다"며 "봉춤이 상체의 힘을 강화시킨다"고 덧붙였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