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후반 일본 도쿄(東京)에서 근무하던 시절의 일입니다. 당시 일본은 버블 경기의 영향으로 전국의 땅값이 계속 상승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영국인 이코노미스트가 재테크 관련 강연회에 나와 영국의 경험을 소개하면서 상승세인 일본의 땅값이 머지않아 급락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그가 소개한 영국의 경험은 이렇습니다.
“18세기 후반 영국에서는 장기간에 걸쳐 전국의 땅값이 상승했다. 영국은 섬나라다. 바다를 메워서 약간 땅을 넓힐 수는 있지만 땅 자체를 해외에서 사올 수는 없다. 땅은 수입해올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다소 비싸게 사더라도 매입 후 계속 보유하고 있으면 언젠가는 오른다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이것이 땅값이 장기 상승한 이유였다. 그런데 계속 오르던 땅값은 어느 날 영국 정부가 내린 조치 하나로 급락세로 돌아섰다. 그 조치는 바로 유럽 대륙으로부터 밀 수입을 자유화하는 조치. 영국은 밀을 주식으로 하는 나라다. 그동안 밀을 해외에서 수입하지 않고 영국 내에서 생산하는 밀만 먹었기 때문에 인구가 늘거나 경제가 성장해 밀 값이 오르게 되면 밀을 생산하는 영국의 땅값도 같이 오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밀 수입이 자유화하면서 해외로부터 영국 내 생산가격의 절반 또는 3분의 1 가격으로 밀을 사올 수 있게 됐다. 이는 간접적으로 땅을 싸게 사오는 것과 똑같은 효과가 있다. 이런 인식이 퍼지면서 영국의 땅값은 급락세로 돌아섰다.”
영국인 이코노미스트의 예측대로 일본의 땅값은 1991년을 정점으로 20년 가까이 하락국면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1974년을 100으로 한 전국 상업지 가격지수는 1991년 249까지 치솟았다가 지난해 말에는 71까지 하락했습니다. 버블 붕괴의 영향도 컸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국제화가 진행되면서 땅도 간접적으로 수입해 올 수 있다는 영국의 경험이 일본에서도 나타났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농산물 수입 자유화, 해외여행 자유화, 국내 기업의 해외 이전 등으로 한국도 이제는 얼마든지 땅을 간접적으로 수입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노후대비 자산관리의 관점에서도 한국은 땅이 좁은 나라다’, ‘땅은 수입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다소 비싸게 사더라도 기다리고 있으면 언젠가는 오른다’, ‘재산은 땅에 묻어 두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라는 부동산 불패신화를 믿었다면 이제는 그 신화에서 벗어나야 할 시기가 되지 않았나 여겨집니다.
강창희 미래에셋 퇴직연금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