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발레 ‘오네긴’을 봤습니다. 이 작품의 안무가 존 크랑코(1927∼1973)는 세상을 떠난 지 26년이 됐는데요, 이분의 안무가 어떻게 지금까지 전해오는지 궁금합니다.(신문경·26·서울 강서구 화곡동)
A: 수제자들이 이어받거나 舞譜 통해 재연
음악에 악보(樂譜)가 있다면 무용에는 무보(舞譜)가 있습니다. 무보에는 대표적인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요. 라반 노테이션(Laban notation)이 안무의 시나리오를 악보 옮기듯 꼼꼼하게 기록한 것이라면, 라이프 폼스(LIfe forms)는 현대무용에 주로 쓰는 개념입니다. 무용 동작을 스캔하듯이 복사해 자료로 저장하는 프로그램이죠. 7월에 사망한 현대 무용가 머스 커닝햄의 ‘그라운드 오버레이(ground overlay)’는 라이프 폼스를 활용한 대표적인 예입니다. 커닝햄은 가상의 무용수의 움직임을 조작해 얻은 영감으로 이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안무 동작, 스텝의 순서, 배우의 동선 등 입체적 움직임 하나하나를 평면인 종이에 옮기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복잡한 암호처럼 적혀 있는 무보는 그것을 그린 당사자만 알아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른 무용수들에게 활용될 가능성이 아주 낮은 거죠. 그보다 다양한 각도에서 동작을 찍은 비디오 녹화가 자주 활용되는 편입니다.
대개의 경우 무보는 안무가의 머릿속에 그려진다고 합니다. 그럼 안무가가 사망하면 어떻게 될까요. 안무의 모든 기록은 안무가의 춤을 가장 정확히 숙지하고 있는 소수의 수제자가 이어받습니다. 20일 막 내린 유니버설발레단의 ‘오네긴’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을 이끌었던 존 크랑코의 안무로 무대에 오른 ‘오네긴’은 그동안 까다로운 공연으로 유명했는데요. 존 크랑코 재단에서 공연권을 따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죠.
중국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 공연권을 획득한 유니버설발레단은 공연을 앞두고 존 크랑코 재단이 정한 매뉴얼에 따라 작품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매뉴얼에는 의상 136벌과 무대 소품(의자 18개, 꽃장식 6개, 침대 거울 액자 등)이 사진으로 기록돼 있고요. 존 크랑코의 안무는 제인 번의 기억을 통해 재현됐습니다. 2월부터 제인 번이 여러 차례 내한해 국내 무용수들에게 일대일로 안무를 지도했고 총연출가인 이반 카바랄리는 의상 무대 등 전체적인 공연 분위기를 점검했습니다. 이 까다로운 공연이 끝난 뒤 유니버설발레단은 의상과 소품 앞면 측면 뒷면을 찍은 사진 300여 장을 증명자료로 재단 측에 제출했다고 하네요.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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