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경유지공업 서울 영등포공장 전경(현 AK플라자 구로본점 자리). 애경의 전부였던 이곳에 1978년 불이 나면서 다시 위기를 맞는 듯했지만 오히려 임직원이 마음을 모으는 계기가 됐다. 사진 제공 애경그룹
영등포공장 화제
1978년 영등포 창고 대형화재
회사 유동자산 21% 재고품
몽땅 잿더미로 사라져 눈물
사업장이 여러 곳에 나뉘어 있다 보니 안전사고가 가끔 일어난다. 2003년 2월 14일에는 애경백화점(현 AK플라자) 수원점에서 불이 나 아찔했다. 폐점 뒤 변전실에서 난 화재여서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거나 회의를 하던 직원들이 아연했던 사고였다.
2001년 2월 13일에는 애경그룹 계열사인 중부컨트리클럽에 등산객의 실화(失火)로 추정되는 산불이 났다. 설날 연휴 기간 중 12번홀에서 불길이 시작돼 겨울의 건조한 페어웨이를 타고 확산됐다. 소방헬기와 소방트럭을 동원하고 소방관과 직원이 모두 나서 밤늦게까지 진화작업을 벌였지만 18개 홀 가운데 8개 홀이 피해를 봤다.
날이 밝아 올 무렵 현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불길이 지나간 자리는 숯덩이처럼 까맣게 변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나와 직원들의 눈시울이 빨개졌다. 다행히도 중부컨트리클럽의 상징이던 14번홀의 소나무는 솔잎 하나 그을리지 않았다. 정초의 화재가 전화위복이 됐는지 그해는 잔디가 예년보다 빨리 올라오고 병충해 피해도 생기지 않아 개장 이래 최고의 영업실적을 올렸다.
가장 아찔했던 상황은 서울 영등포공장 화재 사건이었다. 영등포공장은 1956년 4월 유지분해 가공시설을 준공한 이후 1962년(비누공장, 합성수지 창고, 제품창고, 관리사옥)과 1964년(가소제 전담 생산시설)에 증축했다. 1967년 8월에는 도료를 생산하려고 시설을 확장했고 1968년에는 무수프탈산(PA) 생산시설을 만들었다. 이곳은 1984년 대전공장을 완공하기까지 애경유지의 전부나 다름없었다. 정문에는 남편의 흉상을 세웠다. 1971년 6월 9일 제막식을 열었는데 사우들이 성금을 모아 만들었다.
1978년 7월 8일 저녁, 마침 토요일이어서 집에서 느긋하게 TV를 보고 있었다. 채널을 돌리니 뉴스가 나오는데 영등포에 큰불이 났다면서 카메라로 현장을 비췄다. 우리 공장이었다. 당시 영등포공장의 창고에는 회사 전체 유동자산의 21%에 해당하는 14억 원 상당의 재고 자산이 있었다. 제품 특성상 인화성이 높은 원자재나 완제품을 관리하는 부서라 창고 주변에서의 흡연조차 엄하게 관리하던 곳이었는데 불이 났다.
창고는 모두 8개 동이었다. 제1창고 세탁비누, 제2창고 화장비누, 제3창고 포장재, 제4창고 저장품, 제5창고 페인트제품, 제6창고 세제류, 제7창고 원부자재, 제8창고 세제류 및 페인트제품. 늘어나는 생산량에 비해 창고가 협소해서 일부 제품은 옥외에 저장했다. 이 중 페인트를 보관하던 제5창고에서 누전이 일어났다. 아연실색하여 택시를 타고 공장에 가보니 이미 창고와 안에 있던 제품이 다 타버렸다. 경찰과 소방관이 현장을 통제하며 공장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다.
상황을 파악해 보니 화재는 오후 9시경 영등포공장 5창고에서 발생해 10시 반경 진화됐다. 다행히 다른 창고나 시설물로는 번지지 않아 피해가 확산되진 않았다.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누전으로 추정된다. 화재 직후 뉴스를 본 경인지구 전 종업원 및 관련회사 종업원까지 현장으로 뛰어와 진화작업에 나섰다.
경찰과 소방관을 뚫고 현장에 겨우겨우 들어가니 공장 마당에 직원들이 넋을 놓고 앉아 깡그리 타버린 창고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불이 나자 소방차가 달려와 물을 뿌릴 때까지 창고 안 물건을 하나라도 더 꺼내느라 온몸이 재와 물로 범벅이 돼 있었다. 직원들의 모습을 보니 눈물이 절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