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를 평가한다고?"
2001년 12월 17일 한국축구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거스 히딩크 감독. 그는 1년 6개월 만에 한국축구를 월드컵 4강에 올려놓으며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월드컵 이후 히딩크 감독의 성공 비결에 대해 갖가지 분석과 관련 책이 쏟아져 나왔다. 히딩크 감독의 지도 방법을 경영론에 대비시켜 'CEO 히딩크'니 하는 말까지 나왔으니….
당시 축구담당 기자였던 필자의 생각으로는 히딩크 감독의 성공 요인 중 하나는 아무런 선입견 없이 대표 선수들을 선발한 점에 있지 않나 싶다.
그는 주위의 평가나 각종 자료에 연연하지 않고 선수의 경기 하는 모습을 직접 보고 검토한 뒤 대표팀 선발 여부를 결정했다.
그 전만 해도 축구계에는 대표팀 구성 등 중요한 사안에서 인맥이나 연줄이 상당히 작용을 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감독들도 선수 선발을 할 때 외부의 입김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당시 인맥이나 연줄은 주로 고교나 대학 등 출신교에 따른 학연을 통해 형성돼 있었다.
이럴 때 히딩크 감독을 비롯해 핌 베어벡 코치, 압신 코트비 비디오 분석 담당관, 레이몬드 베르하이옌 체력 담당 트레이너 등 '외국인 군단'이 23명의 태극전사를 선발한 뒤 강도 높은 훈련으로 한국축구를 도약시켰다. 이들 태극전사 중에는 '히딩크 사단'이 아니었으면 대표팀에 뽑히지 못할 '숨어 있던 진주'도 많았다.
체육계에도 학연은 존재한다. 그런데 학연에 따라 편 가르기가 심한 종목, 특히 단체 종목에서는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 야구와 축구는 학연에 따른 편 나누기가 심하지 않은 편이다. 큰 국제대회를 앞두고대표팀이 구성되면 한마음으로 똘똘 뭉친다. 두 종목은 이미 아시아를 넘어 세계무대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며 강자로 대접받고 있다.
'어느 학교 출신이냐'를 무척 따지는 단체 종목을 보면 대표팀이 '모래알' 같은 모습을 보이며 국제무대에서 참패를 당하기 일쑤다.
대학에 순위를 매겨 1위부터 줄을 세우는 소위 대학 평가라는 것이 있다. 이것이야말로 학연을 부추기고 선입견을 고착화 시키는 일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출신 학교를 '어미 모(母)'자를 써서 모교(母校)라고 부른다. 영어에도 앨머 마터(alma mater), 즉 모교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mater는 mother(어머니)와 같은 뜻이다.
어머니라는 말을 붙일 정도로 자신의 출신 학교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애정과 자부심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런 모교에 대해 이런 저런 데이터를 들어 대학 순위를 정하는 것이야말로 "쟤 엄마가 네 엄마보다 더 위에 있어"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히딩크 감독이 CEO로 있는 회사가 있다고 하자.
신입사원을 뽑기 위해 지원자들의 출신 대학 순위가 적힌 자료가 올라왔을 때 CEO 히딩크는 어떻게 했을까.
권순일 | 동아일보 스포츠사업팀장 stt7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