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아프간에서 가장 위험한 일은 여자로 태어나는 것

입력 | 2009-09-25 15:03:00



샤민의 갈색 눈동자는 텅 빈 듯 했다.

그녀는 잊고 싶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그날의 기억을 힘겹게 떠올렸다. 남편에게 강간당하고 남편이 휘두르는 칼에 베어 죽기 직전까지 갔던 악몽의 날이었다.

15년 전 결혼 당시 샤민은 10대였다. 남편은 꽃 같은 신부를 수시로 전깃줄과 망치 끝으로 때리고 욕보였다. "남편이 망치를 들고 저를 쫓아왔어요. 소리 지르면 제 몸에 구멍을 뚫어놓겠다고 윽박질렀어요."

하루는 남편의 매질을 견디다 못해 집을 뛰쳐나와 경찰서로 갔다. 남편은 경찰에게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맹세했고 샤민은 남편과 집으로 돌아갔다. 며칠 후 남편은 샤민을 한적한 곳으로 데리고 가 부르카를 올리고 또 욕보였다. 칼로 그녀의 온 몸을 베었다. 지나는 행인이 아니었으면 그대로 죽을 뻔했다.

샤민은 현재 카불의 보호시설 '아프간여성을 위한 여성(WAW)'에서 생활하고 있다. 미국 CNN은 24일 샤민과 함께 WAW의 보호를 받고 있는 54명의 여성과 어린이들의 아픈 과거를 통해 아프가니스탄의 여성 인권 유린 실태를 고발했다.

유엔 여성개발기금에 따르면 아프간 여성들 가운데 90%가 가정 폭력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하지만 WAW같은 보호 시설은 10곳 정도에 불과해 여성들은 고스란히 가정 폭력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가족들도 이들에게 울타리가 돼주지 못한다. 남자나 남편에게 폭행당하는 여성들은 이들 눈에는 피해자가 아니라 죽어도 마땅한 '수치'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샤민의 여동생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을 때도 부모들은 외면했다. 그녀의 여동생은 11세 때 강제 결혼을 당했고 늙은 남편에게 수시로 얻어맞다 15세때 남편에게 살해당했다.

WAW 관계자는 "아프간 여성들은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맞는 것을 보고 자라고 스스로도 아버지나 남자 형제들에게 맞으며 생활한다"며 가해자들이 별다른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 것을 당연시하는 뿌리 깊은 문화를 지적했다.

성인 여성들만 피해를 받는 것이 아니다. WAW에 사는 호스니아는 여덟살이다. 이 꼬마 여자아이는 다섯살때 한 청년에게 몹쓸 짓을 당했다. 피투성이가 된 채 강물에 버려져 떠다니는 딸을 발견하고 건져낸 이는 아버지였다.

호스니아는 병원에서 조그만 몸의 상처가 아물 때까지 한 달을 지냈다. 호스니아를 괴롭힌 청년은 부잣집 아들이었다. 뇌물과 연줄로 처벌받지 않고 풀려난 이 청년을 호스니아의 아버지는 예외적으로 문제 삼았다. 이 청년은 그 후 6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가난한 농부인 호스니아의 아버지는 자신에게 딸을 지켜낼 만한 힘이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청년이 풀려나면 보복을 해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성폭력 피해자가 처벌받는 이 나라에서 딸에게 장래를 약속하는 길은 딸을 떠나보내는 길 밖에 없었다.

CNN은 WAW에서 보호받고 있는 아프간 여성들의 끔찍한 사연들을 전하며 '이것이 그들에겐 일상'이고 '아프간에서 가장 위험한 일은 여자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끝을 맺었다.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